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종달이 Dec 22. 2022

나는 제법 비위가 센 여자다.

변기 청소업체나 차릴까? (비위 약하신 분들은 이번 글은 스킵해 주세요)


아들이 세 살쯤 되었을 때였다. 일요일, 마포에 있는 이모 댁에 가족 모두가 다녀오는데, 아들이 멀미를 했다. 남편은 창문을 열어 주고 차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도 아들의 멀미는 멈추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는데, 아들이 다급하게 "엄마"라고 불렀다. 


"응, 왜? 힘들어? 많이 어지러워? 잠깐만. 아빠가 차에 기름 넣고 있으니까 좀 괜찮아질 거야. 창문 열고.."

"웩, 엄마, 나... 토... 웩, 앙.. 냄새 나. 웩"


기름 냄새 때문이었는지, 먹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멀미를 하던 아들은 결국 나에게 토를 했다. 토를 하면서 울고, 토 냄새가 난다고 또 토하고. 울고 불고 하는 애를 달래느라 내 손에 아들의 토한 밥알들이 묻어 있었던 것도 몰랐다. 

밥알이 잔뜩 묻은 손으로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토사물의 역한 냄새를 참고 있었다. 


"괜찮아, 울지 마. 집에 가서 얼른 씻자. (웩)"

나는 생각보다 꽤나 비위가 센 여자다. 



거식증 약을 처방받고 심리상담을 같이 진행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다.  나를 위한 시간은 주말에도 없었다. 병원을 다녀오면 어느덧 하루가 다 지나간다. 그래도 아들이 음식을 점점 먹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48kg , 체지방률 3%의 몸에서 살이 금방 붙었다. 홀쭉한 볼에도 살이 오르고 제법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들의 음식 일기에는 여전히 '살찐 돼지' , '먹는 내가 싫다. 혐오스럽다'라는 저주의 말들이 있었다.  


'아, 뭐야! 이렇게 쉽게 낫는 거야? 거식증 별 거 아니었네. 다들 유난은......' 


1년 넘게 식욕을 극도로 참았던 아이는 빠르게 음식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정상 몸무게가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먹고 토하기가 시작되었다. 


"어머님, 보통 아이들이 거식증에 걸리면 먹고 토하는 일종의 '먹토'를 많이 하는데, XX는 하질 않네요. 좋네요."

"아? 진짜요? 애가 워낙 정신력이 강해서요. 토 안 하면 금방 낫죠?"

"네, 토를 일단 하면 정말 고치기 힘들 거든요. 지금 토를 안 한다는 거-정말 잘하고 있는 거예요."


젠장! 그렇게 말한 지 얼마 안 돼서 아들이 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내게 토를 한다고 솔직하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엄마, 나 살찌기 싫어서 토했어요. 먹긴 먹어야 하고, 이제 먹는 거 참을 수도 없어. 나는 병신이라서."

"아니야, 다 그런 거야. 괜찮아." 


(어느 때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정말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곤 한다. 그들의 수년간의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경험이 완벽하게 엇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별로 일어나질 않는다.)



아들은 미친 듯이 토하기 시작했다. 한 동안 잠깐 토가 멈췄지만, 이미 '먹토'의 효과를 아는 아들은 철저하게 먹고 토하기를 하고 있다. 


"아들, 토한 거 좀 치우자."


"엄마, 치운 건데요!"


"아니, 이 녀석아, 이게 치운 거야? 참. 칠칠치 못하게. 좀 더 깨끗하게 치워야지."


"네,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토하고 좀 더 신경 쓸게요. 이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응. 그으래. 엄만 깨끗한 게 좋거든."


토한 것을 왜 안 치웠냐고 투닥거리면서 잔소리하는 아들과 나의 대화는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변기에 붙은 배설물의 찌꺼기 보다 음식 찌꺼기가 더 청소하기 힘들 다는 것이다. 

'먹토'를 한다는 것은 먹자마자 완벽하게 소화되기 전에 즉, 위로 가서 철저하게 분해하기 전에 식도 어딘가 쯤에 있는 음식물을 일부러 끄집어 올리는 것이다. 

큰 숨을 쉬면서 '으웨웩'을 한다. 그럼 신기하게 음식물이 '좌르르'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런 행동을 하면, 당연히 변기 주변에 음식 찌꺼기가 튄다. 

중학생 덜렁대는 아들이 그것까지 청소할 리는 없다. 




옥 x , 홈쇼핑 x 세정제, 뿌리는 살균 x x, 물에 넣기만 하면 소독되는 xx 세정제... 

변기 세정제를 뒤지고 뒤져서 계속 다른 제품을 찾는다. 내 맘에 '쏙' 들만큼의 완벽한 세정력을 갖춘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역시 광고는 믿을 게 못 된다. 변기 세정제 회사의 어떤 사장님도 '폭식증 환자' 전용의 변기를 위한 세정제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성질을 못 이겨서 결국 비닐장갑을 끼고 락스를 뿌린다. 수세미로 일단 빡빡 닦은 뒤, 긴 솔로 주변을 싹싹 닦는다. 마지막으로는 뜨거운 물을 끼얹고 소독을 마친다. 그래야 변기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나 원 참, 공중 화장실도 아니고......'

아들의 폭식증이 심해지고 '먹토'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청소 실력 또한 놀라운 속도로 향상하고 있다. 



숨겨진 재능 하나 -비위도 세고, 변기 청소도 잘한다. 면발 종류를 뱉어내면 사방으로 튀기는데, 나는 그것까지 다 닦아낸다. 김칫국물은 잘 지워지지 않지만, 나에게는 안 통한다. 

"아, 이참에 화장실 변기 청소 전문 업체나 창업해 볼까?" 






대박이 날 것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내가 창업을 하기 전에 아들이 '먹토'를 멈췄으면 좋겠다...... 

이전 06화 6종 종합 선물세트도 아니고 나 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