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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Dec 29. 2022

아들아, 엄마 걱정은 하지 마라.

거식증과 폭식증은 한 끗 차이다. 

거식증 초기에는 부식비의 지출이 거의 없었다.



랭x 닷컴에서의 닭가슴살, 곤약밥, 곤약짬뽕, 곤약짜장, 단백질 쿠키, 단백질 음료.. 

이런 것들을 패키지로 사면 할인률도 높고 1+1 사은품도 있다. 


굳이 군것질, 야식과 외식을 하지 않아도 되니 한 달 카드값이 상대적으로 다른 달에 비해 적게 나왔다. 


중학생 아들이 48kg의 몸무게를 유지하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입었던 헐렁한 티셔츠가 

핏 좋은 '힙'한 스타일로 변신을 하였다. 

굳이 옷을 새롭게 사지 않아도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몸무게 보다 더 적게 나간 아들의 몸무게는 

나의 지갑을 꽁꽁 닫게 하였다. 

아들의 거식증으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생활비의 여윳돈이 생겼다. 

 




거식증 중기가 되니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병원 치료가 한몫했다. 


하루 세끼의 한식,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간식은 한동안 닫혀 있었던 나의 지갑을 활짝 열게 해 줬다. 


'24시간 지갑 오픈 행사'입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는 아예 식탁 위에 내 신용 카드가 놓여 있었다. 엄마표 카드는 모두의 카드인 것처럼. 


시리얼의 대 향연을 시작으로 빵 순례가 시작되었다. 전국 까지는 아니어도 아들은 한이라도 풀 듯이 동네 빵집을 찾아다녔다. '맘모스 빵'은 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빵 중의 하나였다. 맘모스 빵 한 개는 거식증 중기를 겪고 있는 아들에게 정말  순식간이다. 달콤한 사과잼, 딸기잼과 하얀 생크림이 들어가 있는, 땅콩 가루가 뿌려져 있는 빵을 한 입 먹게 되면 더는 참을 수 없게 된다.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어느 순간 맘모스 같이 커다랐던 빵은 사라진다. 





거식증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서는 본격적인 상담과 치료가 진행되었다


우선 한창 클 아들의 부족한 영양소를 음식으로 채워야 했다. 그때부터 내 핸드폰에 배달앱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달 안에 '배달의 민 X' '쿠팡 이 X'의 VIP 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것인지, 그동안 배달 음식을 스스로 자제해서 인지, 

아들은 배달 음식만 먹겠다고 한다. 

자장면, 탕수육, 마라탕, 피자, 스파게티, 치킨, 튀김, 순대, 소바, 돈가스, 떡볶이... 등등. 

편의점도 사랑한다. 동네의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할인점들이 미워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어머님, 먹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면 안 돼요. 누구나 스트레스받으면
 폭식할 수 있고, 더 많이 먹을 수도 있고,
식단 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합니다.
실패도 해 봐야 하고. 완전 바닥까지 떨어져야 이 병이 낫습니다.





한 달 부식비가 2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식구 수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들 혼자서 먹은 것이다. 중 2 남자아이의 오로지 단독 부식비 230만 원. 

(거식증, 폭식증에 걸리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이 갑자기 생각났다.)



"엄마, 나 또 시켜 먹어도 돼요?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니에요? 



"아들, 괜찮아. 엄마가 그러려고 돈 버는 거야."



"아들: 아니, 그래도 매일 시켜 먹고, 반찬도 사고, 샐러드는 샐러드 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간식은 간식대로.. 휴, 어떡해요? 엄마..." 


"아들, 누가 너보고 그런 걱정하랬어? 괜찮아. 어린 네가 2년 동안 음식을 안 먹었는데, 먹고 살쪄도 돼.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들 앞에서 큰 소리 빵빵 쳤다. 코로나 속이라 강의도 학교도 닫혔다. 

돈을 벌어야 했다. 줌(ZOOM)을 켜고 다국적 학생을 상대로 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새벽까지 일할 때, 아들은 야식을 시켜 먹는다. 그리고 먹고 토한다. 




다행히, 줌은 내가 신용 불량자 되는 것만큼은 피하게 해 줬다. 


다행이다. 

아들이 맘껏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서. 

다행이다. 

영영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을 것 같더니, 식욕이 되살아 났다. 


힘들다. 괜찮아. 이 쯤은.. 

너 하나 살려 보겠다는데... 


"아들아, 엄마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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