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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Nov 03. 2022

맘껏 욕하세요. 자식 놈 키우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냥 집에서 부모가 잘 키우면 되지, 무슨 저런 말을? 호들갑에 유난 떠는 엄마들의 치맛바람'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잘 먹고 잘 싸고 그랬던 그 시간. 남들이 내 아이들을 보기만 하면 칭찬하던 때, 

그 행복은 '부모들이 살면서 느끼는 평범하지만 최고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짧다. 

애들이 세 살 정도 될 때까지...... 적어도 나는 그랬다. 




첫 째,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강남에 있는 유명 병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거식증, 우울증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 

한 시간 상담에 15만 원+약값. 아쉽게도 비보험, 실비 적용도 안 된다. 이곳에 가려면, 치열하고 빠르게 예약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접수 선생님과 아주 친해져야 한다. 웃으면서 인사 잘하기, 쿠키 사다 드리기는 무조건 해야 하는 행동강령이다.

(접수 선생님한테 받은 정보들은 그야말로 '찐'이다. 가끔 병원 원장님과 시스템을 직원 입장에서 욕도 하는데, 이것도 유용하다. '아, 이 병원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선생님은 이때, 비공식적으로 쉬시는구나.' )



둘째, 집 근처 병원의 '단골 환자'가 무조건 돼야 한다.

'우울증, 폭식증, 거식증, 강박관념, 불안증, 대인기피증' 등등의 증세가 있는 아들은 동네 모든 병원을 섭렵한다. 운동을 하고 오면 늘 생기는 '골절, 인대 파열', 선천적 비염+후천적 예민성 , 환절기 독감+ 스트레스성 소화 불량, 과민성 대장 증후군, 두피 질환, 날 닮아서 피곤할 때마다 도지는 코피, 개를 꼭 키우겠다는 신념으로 버티는 개 알레르기, 선천성 안검하수, 핸드폰과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오는 급격한 시력 저하, 구토에서 오는 역류성 식도염,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깨질 듯한 두통과 가슴 통증, 맥박의 불안정한 뜀, 잇몸 병' 등등.

 얼마 전에는 새벽에 응급실도 다녀왔다. '고환이 아프다'라고 하는데, 집에 어른 남자가 없었다. 결국, 아들을 데리고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하룻밤에 30만 원을 내고 왔다. 애 아빠는 늘 말한다. 

"네가 병원을 차려. 그냥."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 달 병원 지출 항목은 항상 마이너스다. 병원에 가서 접수하고 진료받고, 의사 선생님께 '아이가 너무 아파요'라는 비장함으로 말하는 것도 힘이 든다. 

행여나 아픈 것에 대해서 '별 거 아닌 듯' 말하면, '공감 못한다' 고 아들이 난리를 친다. 

그걸 볼 바엔, 최대한 '애가 죽을 것 같아요. 꼭 치료해 주세요.'라는 얼굴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세 째, 경찰관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  며칠 전, 아들과 사소한 말다툼 중, 아들이 112 번호를 잘못 눌렀나 보다. 바로 끊어서 연결도 안 되었는데, 3분 만에 우리 집 현관문 앞에 경찰관이 출동해 있었다. 

"어머님, 이미 신고 기록이 많아서요, 저희가 무슨 일인가 해서 출동했습니다."

"어머님, 아드님 답답해하면, 경찰서로 보내세요. 저희랑 얘기라도 하게요."

내가 무슨 재벌도, 대통령도 아닌데, 동네 파출소에서 아이를 극진 관리해 주는지 그저 감사하다. 

하지만, 내 얼굴을 혹시나 알아볼까 봐 파출소를 지날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간다. 



넷째, 아들놈 학교에서 좀 유명해져야 한다.

우리 엄마는 나를 키울 때, 내가 너무 뭐든 잘해서 유명해졌다고 했다. 

엄마의 높은 욕심은 '학부모 회장'을 2년 내내 맡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아, 우리 엄마 너무 심한데. 왜 이리 맨날 선생님들이랑 친한 거야.' 

그런 거부감이 어렸을 적부터 있었던 나는 아예 학부모 활동과 담을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놈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모두 안다. 

담임 선생님과는 1일 1 문자, 전화통화를 한다

"선생님, XX 가 오늘은 몸이 불편해서요. 조퇴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XX 가 토해서요, 보건 교사입니다."

"어머님, 학년 부장인데요, XX가 불안하다고 저한테 왔어요. 어떡하죠?"

031-2--2----

이 번호가 찍히면, 손이 벌벌 떨린다. 오전에 별일 없어도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긴장을 놓쳐선 안된다. 




다섯째, 모든 종교에 대해서 관대해져야 한다. 

사실, 기독교 모태 신앙인 나는 아들놈 때문에 기도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고난을 주시나요.' 신을 원망했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서 수시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성경을 듣는다. 사라졌던 신앙심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법륜스님, 혜민 스님 등 스님들의 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 중이다. 다 맞는 말이다. 불교라고 배척해서는 절대 안 된다. 

역시, 모든 종교는 평등하고 좋은 것이다. 나약한 인간에게. 


여섯째, 맥도널드 셔틀이 되어야 한다. 

쿠팡 이츠,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 앱에서 VIP는 기본이다. 새벽마다 일주일에 최소 1-2번은 '맥모닝 세트'를 사러 가야 한다. 새벽 6시 20-30분 사이에 나는 맥도널드에 간다. 점장은 내가 가면, '브런치 세트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자동적으로 준비한다. 

"오늘도 사러 오셨네요."


맘껏 욕하세요. 치맛바람이어도 괜찮고, 유난 떤다고 해도 돼요.
내가 내 아들 키우겠다는데!! 
그 때야 알았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뜻의 의미를......
그런 의미에서 내 아들은 최고 중의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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