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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Nov 29. 2022

섭. 식. 장. 애_ 오늘은 유난히 더 힘드네요.

작년 5월을 시작으로 병원에 본격적으로 상담과 진료를 다닌 지 1년이 넘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새로 온 선생님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덤이었다. 


"선생님, 언제면 끝나나요? 대체 언제요."


"어머님, 섭식장애는요. 쉽게 안 끝나고요, 재발도 잦고요."


'네, 저도 다 아는 이야기예요....................' 갑자기 성질이 났다. 


아들이 병원을 다니면서 맘의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었다. 이번 여름부터 말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으니, 불과 몇 개월이 안 지났다. 그렇게 상담사 선생님과의 깊은 유대관계가 쌓여가고 있을 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담 달에 출산을 해야 해서요. 어머님과 XX이 새로운 선생님을 원하시면 그렇게 바로 연결해 드리고요, 아니시면 3개월 정도 기다리시고 저 복귀한 다음에 보시면 되는데요.. 

현재 상태로는 3개월이 좀  길을 것 같아서요..."



그때서야 상담사 선생님의 배가 빵빵하게 불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이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 30분은 거의 아무렇지 않은 척,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나 농담만 하고 오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뭐, 잘 지내죠. 네 별 문제없고요."


'야, 이 새끼야. 네가 지난주에 한 일은 별 문제 아니냐?'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고 나는 아들 다음으로 상담실에 들어가서 시시콜콜 있었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온다. 그렇게 상담사 선생님의 기록이 나의 보고와 상담으로 쌓여 갈 무렵, 아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엄마,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나보고 철이 빨리 들었다는데."


"어, 아들? 상담 선생님이랑 뭐 좀 말하고 왔어?"


"아니, 그냥 나랑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서. 의외로 좀 잘 통하는 거 같아."



믿었던, 지난 1년 반의 내 치부를, 내 이야기를 모두 안 세상의 유일한 한 명의 사람이 '출산'을 한다고 사라진 순간,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사로 잡혔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공주님의 출생을 완벽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남편도, 친정 엄마도 아닌, 아픈 내 아들의 엄마였으니까. 배신감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그냥 3개월 기다릴까? 깡으로. 어차피 약만 먹으면 되잖아. 상담 비용도 안 들고.'

나는 그런 용감한 객기는 부리지 못했다.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 '뭐야, 의사나 상담사나 다들 이렇게 무책임해?' 

그들의 행동이 결혼 후 '첫 출산'이라는 절체절명의 정당성을 갖추고 있고, 코로나 속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온라인으로 학회가 열려서 진료를 못 보게 되더라도 나는 이해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거식증-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이다. 아쉬운 건 그들이 아니라 나다. 

나와 내 아들이 아쉽고 간절한 것이니 뭐든 참아야 했다. 


그래서 였다. 처음 만난 마스크 위에 눈이 외국인 같이 생긴 상담 선생님에게 나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언제면 끝나요? 대체? 언제요?"

역시, 그녀는 고수였다. 침착하게 '거식증-폭식증-섭식장애'의 사이클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섭식장애는요, 고스란히 가족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고통을 동생, 오빠, 누나, 엄마, 아빠,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래서 함께 고통스럽게 그걸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 섭식장애이에요. 어머님, 힘드시죠? 

이제 아드님이 거식증에서 폭식증 단계로 왔으니, 한 단계 나아간 것이고요, 좀 더 길게 보셔야 해요. 

아드님 특성상, 강박증, 완벽 증도 굉장히 심하고요, 불안증도 많았던 상태라서요......."


젠장, 괜히 물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전도 못 챙겼다. 

섭식장애 -가족이 고스란히 함께 그 고통을 나눠 갖는 것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그 '절대적 진리'를 듣고 말았다. 

나도 안다.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나으려면 또다시 빼꼼 머리를 들어서 '거식증 혹은 폭식증' 이란 놈들이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알린다는 것을. 내 1년이 어땠나? 나와 아들의 1년이 어땠나? 지옥이었고, 지금도 지옥이다. 그래서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굳이 그렇게 또박또박 정리하듯이 정의해 줄 필요는 없었다. 나도 작년부터 '섭식장애'에 관한 영상, 학회, 책은 박사 수준까지 섭렵했다. 밑줄 치고 메모하고 , 정리하고 , 그런데 이론은 이론이다. 

이론을 알아서 이해가 되는데, 나는 그다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애와 싸우고 투닥거리고 이해 못 해서 난리 치는 그냥 엄마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 노릇 - 그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들과 함께 새로운 선생님과 상담을 잘해보자고 약속을 했다. 

"상담 갈 때마다 엄마가 또 용돈 줄게. 맛있는 버거도 먹자. 새 상담 선생님 엄마가 만나보니 꽤 괜찮아. 좋은 거 같아." 

가보겠다는 약속을 아들한테 받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병명도 알고 원인도 아는데, '사람 마음의 병'이라는 게 수술 해서 딱 고쳐지는 게 아니라 너무 힘들다. 

섭식장애 -오늘은 유난히 좀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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