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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Dec 23. 2022

토해서 없어진다면 차라리 다 토해라.

구토를 선택한 너의 행동은 탁월했다.

나는 안다. 아들의 마음이 아픈 것이 모두 나 때문이란 것을...


내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어른의 대화'를 했었고,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아이한테 그대로 퍼부었다.


아들은 엄마가 불쌍하였을 것이다. 딱하기도 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언젠가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왜 그렇게 멍청이 같이 사세요? 그러니까 아빠랑 이혼한 거지. 아빠가 이혼을 잘한 거 같다니까. 나라도 엄마랑 살기 싫었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의 뺨을 때렸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 지랄 지랄 난리를 쳤다.

'네가 아들이냐고, 자식이 어떻게 그런 말 하냐고. 사람이면 그런 말 못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아들에게 실컷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아들은 모두 알고 있다. 자기의 부모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줄곧 보았다.

콩가루 집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믿고 있었던 엄마가 감정 조절 못해서 어린 자기에게 어떻게 화풀이를 했는지.



그토록 꾹꾹 눌러왔던

분노, 배신, 슬픔, 원망, 미움의 찌꺼기들을 밥알과 함께 뱉어내는 중이다.

어른이지만 어른 같지 않은 부모를 인정하느라 힘들었던 한숨을 김칫국물과 함께 뱉어내는 중이다.

달콤한 칭찬 뒤에 따라오는 위선을 뱉어 내고

어른들이 저지른 만행을 뱉어 내고 있다.




짠하다. 변기 속에 얼굴을 쳐 박고 '웩웩' 하면서 핏줄 터지도록 뱉어내는 아들의 모습이.


아들을 그렇게 만든 나와 애 아빠는 부모 자격 미달이다.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 추스르지 못하는 내가 너무 거지 같다.


(브런치에서만큼은 벌거벗겨질 만큼의 솔직함을 쓰고 싶었는데 어른이라서 완벽하게 솔직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


나는 병신 같이 이혼한 남편과 아직도 한 집에서 살고 있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인다.

다시 재결합해 보자는 그 말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빈 말 임을 바로 조금 전 알았다.

멍청한 년이다.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 사람. 여전히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는 그 사람의 핸드폰을 훔쳐보고

'아, 나는 그냥 애엄마로 필요한 거구나.'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다시 기분이 오락가락 해 진다. 나에게 '다신 말 걸지 마'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인 줄 알면서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아들이 나를 보면서 한심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아들보다 내 마음이 더 개판이다. 찢어져서 너덜너덜 해졌고 구멍이 뻥뻥 뚫려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볼품없이 엉망진창인 내 마음.


차라리 나도 폭식증이나 걸려서 내 가슴속에 있는 것들을 다 토해내면 좋겠다.


구토를 선택한 아들의 행동은 탁월했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아들이 알려준 방법대로 토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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