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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Mar 09. 2023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착각

두 번 다시 엄마는 하지 않을 거야.

"아이가 천재 아니에요? 대단해요. 누굴 닮아서 그런 거예요? 부럽다."

......


"아이가 너무 튼튼하고 건강하네요. 어쩜 , 이렇게 체격도 좋을까."

......


"아이가 참 바르네요, 착하고.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


공부를 대단히 잘하거나 천재도 아니었고

(오히려 반대 상황이면 더 맞을 수도...)

남보다 엄청 강한 체력을 가지고

병 치례를 하지 않은 건강함도 없었다.

(작은 상처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예민한 아들이다. 건강실비보험 혜택을 이렇게 완벽하게 받는 사람은 없을 거다.)


마지막 한 가지 착각은

착한 줄 알았는데 착하지도 않은 거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남들에게는 너무나 착한, 여린 아이인데,

나에게는 '그토록 나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나쁜 것이 아니라, 지독하게 싹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이 온전한 착각임을 깨닫고, 나는 나와 내 아이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아이를 잘 키우는 부모들은 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라는 말이 진리임을 알 게 된 날,

나는 두 번 다시는 '엄마 하지 않을 거야.'라는 결심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일주일이 되어 가니, 슬슬 녀석의 습관 중 하나인 '자기 몸 돌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기 몸을 지독하게 잘 아는 녀석이었다.

살짝 미열이 나도 금세 알아차리고

조금만 목이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가자고 한다.


"아냐, 좀 더 지켜봐야 해. 엄마 생각엔 아닌데."라고 하루 이틀을 미루면,

바로 그 다음날부터 아들의 호된 병간호를 해야 했다.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이 '네가 나보다 더 잘 보는 거 같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우선 열린 마음으로 그 녀석의 신호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새 학기가 문제였다. 새 학기다 보니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서

30분 정도의 짬이 나서 설거지를 하려는 순간,

아들이 나에게 '자기 몸의 어디 어디가 아프다'라고 말을 하였다.


(이미 거식증을 지나 폭식증 단계의 아들은 먹는 족족히 토하는 일상을 꽤나 오래 해 왔다.

토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들의 위는 이미 약해져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들 스스로가 아직도 완벽하게 토하는 것을 못 고쳤으니, 할 말이 없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들 몸의 신호를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렸다.




"괜찮을 거야. 오늘 정형외과에서 X-RAY 찍고 아무 문제없었다면서?"


"아니, 근데, 계속 아프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 엄마는 의사도 아니고, 그래서 병원 가서 치료한 거잖아.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다면서?"


"엄마는 도대체 누구 말을 듣는 거예요? 내 말이에요? 의사 선생님 말이에요?"


"아, 아니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 그렇지.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까 다른 병원 가 봐. 네가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하니까 그럴 거야."


"하.... 엄마, 내 엄마 맞아요? 말을 어떻게 그렇게 남 말하듯이 하세요?"


"내가 언제? 네가 매일 아프다고 하니 그렇지."


아뿔싸! 나는 결국 나는 내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지, 역시 엄마는... 내가 없어져 주었으면 좋겠죠? 낳았으면 엄마 역할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승전-내 엄마 아니다. 나를 왜 낳았느냐, 엄마 역할은 제대로 하냐.. 이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이런 급격한 전개에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또다시 나의 인격은 47살에서 17살로 하향되어서

아이와 설왕설래의 지독한 말싸움을 하였다.


"엄마, 역시 최고예요.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요?"


"너, 그게 무슨 엄마한테 하는 말버릇이야?"


"엄마는 꼭 불리할 때, 나이 이야기 하네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하세요."


"야! 그런 것이 요즘 너희 세대의 특권이니? 예의 좀 갖춰서 말해."


"엄마는 저한테 예의 갖추셨어요?"


와! 한 마디도 지질 않는다. 차라리 말을 못 하는 녀석이면 좋겠는데,

이 녀석의 어휘력은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서로의 방으로 '꽝'이란 효과음을 내면서 들어가는 것이 싸움의 끝이었다.




내 아이의 착각을 깨닫는 순간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결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자격도 없었고,

엄마 자격시험도 빵점이고

어쩌면, 영원히 빵점이 될 수 있을 '문제의 엄마'이었다는 것!


"두 번 다시 엄마는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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