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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Nov 18. 2022

나는 오은영 박사가 너무 싫다.

"차라리 몸이 아픈 아이였음 좋겠다." 

나도 한 때는 '내 아이' 하나 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 

그 시간은 이제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내게는 지금 지옥 같은 삶이 있다. 나는 아이의 거식증과 함께 2년 반째, '지옥' 속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 

제기랄. 씨 x. 욕을 해도 화가 안 풀리니,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엠 스쿨'이라는 '알림 앱'이 있다. 엄마들에게 학교 알림장을 보내주고, 학교 행사나 관련 정보를 주는 아주 똘똘한 앱. 나는 그 앱의 '덕후'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나서 '아이엠 스쿨'의 '톡톡 수다'를 정독하는 것이 내 오전 일이었다. '톡톡 수다'에는 엄마들의 '고민, 수다'들이 가공되지 않은 채, 그대로 올라온다. 

'남편이 바람이 난 것 같다, 아이가 갑자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무시한다, 학부모 회의를 가야 하나, 헌 체육복을 구한다, 기말고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추석에 시댁에 가야 하나, 등등등' 


그 앱에 올라온 '한 마디'들이 지난 1년 동안 나를 살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글을 정독하면서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읽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 이 정도면 양호하네.'라는 안도감이 들면서. 

나도 모르는 아이들과 스스로 비교를 하고 안심을 하면서 일과를 씩씩하게 보낸다. 



"음, 그래, 경찰서를 다녀오고, 평생 엄마 말 안 들어도 기다려 주면 된대."

"조금만 기다리고, 믿어 주세요. 아이들은 믿는 만큼 바뀝니다."

"엄마들, 파이팅이에요."

"저도 예전에 아이와 별 짓 다 해 봤는데, 그냥 믿어 주니까 다 되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어.' 

우리 아들은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 아니니까, 희망은 있다. 

누구를 때리는 것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절대 못하는 아이. 

남들에게는 지극히 좋은 아이. 

모든 선생님들에게 '모범생'이라고 불리는 아이, '착한 아이' 



'순한 아이', '맘 여린 아이', '눈물이 많은 아이', '동생에게 양보하는 아이', '친구들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아이', '모든 것을 솔선수범했던 아이' , '욕도 안 했던 아이', '리더십이 있었던 아이', '책을 좋아했던 아이' , '늠름한 아이' , '발표를 잘하는 아이',  '남들 앞에서 장기 자랑하는 것을 즐기던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끔찍하게 여기는 아이', '아빠와 엄마가 싸우면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 '아들 맞냐고 할 만큼 내게 유난히 수다스러웠던 아이','친구들과의 다툼이 나면 먼저 사과하는 아이'......

그랬다. 


아들이 거식증이 걸리고 나서,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최소한 나에게만 '최악'인 모습이 되었다. 



요즈음, 모든 방송에서는 '상담 예능'이 대세다. 나도 한 때는 '오은영 박사'의 책과 그분의 '상담 멘토링'을 굉장히 좋아했다.


'와, 족집게다. 어떻게 저렇게 상담을 잘하지? 저 엄마가 잘못했네. 그래, 어른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야. 애들은 잘못이 없어.'라고 손가락 질 하면서 안주 거리 삼듯이 방송을 보았던 적이 그립다. 

오은영 박사의 말은 절대 진리 같다. 하지만, 요즈음 그 내용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방송에는 나와 내 아들과 같은 사례가 너무 많이 나온다. 보기 거북해 졌다.


"어머님, 분명한 것은, 어머님이 바뀌셔야 해요. 해 보세요."라고 방송 속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내 얘기 맞다. 


설상가상, 우리 아들은 마음의 병이 몹시 심하다. 

정신과를 가도 잠깐만 호전이 된 것 같고, 아들의 난폭한 행동, 분노-모두 이해가 되는데, 

나도 사람이라서. '욱' 하려다 참고, '야' 하려다 참고, 신나게 노려보다가 결국 터트린다. 


"이 새끼가, 어디서 엄마한테 그래?"


다니는 정신과에서는 나보고 '무조건' , '절대적으로' , '이유 막론하고' 참으랬다. 그게 애를 살리는 것이란다. 



차라리, 아이가 마음의 병이 있지 않고,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벌 받을 생각을 한다. 

천하의 나쁜 엄마다. 몸이 아프면, 최소한 남들에게 손가락질 대신, '위로'라도 받을 수 있고, 

'이상한 눈빛'에서 홀가분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지독하게 나쁜 '마음의 병'을 걸렸을까?


욕을 하면서 나가는 아들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 치고 싶다. 


전 국민의 '상담 멘토'인 '오은영 박사'가 너무 싫다. 


한 마디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아서, 결국 모든 것이 '부모의 잘못'이라서, 그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어서 

나는 그 박사님이 너무 싫다. 



이전 12화 아들은 '내 1호 안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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