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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Nov 03. 2022

오늘도 불합격.

전 과목 빵점입니다. 

아들이 학교, 책, 공부에 손을 놓은 지 2년이 되어 간다. 공부랑 아예 담을 쌓았다. 

그래도 시험 때가 되면, 나름 '긴장'은 하는 것 같다. 친구들이 다들 학원과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하니, 신경이 쓰이긴 할 것이다. 

아들의 중학교는 이 동네에서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학교이다. 우리 가족이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3년이 되어 가는데, 그 이전부터 이 학교는 유명했다. 


"저 중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들 그렇게 공부를 잘한대요. 외고, 과학고, 특목고는 싹 쓴대죠."


"그래 보이네요, 학교가 유흥 업소 근처도 아니고, 어쩐지. 이 학교 간다고 하는 애들이 많이 없더라고요." 

동네에서 '00 중학교'에 보낸다는 엄마들은 좀 달랐다. 학원은 최소 2-3개, 어릴 적부터 완벽한 '교육 로드맵'과 '교육철학'이 있어서 다들 전문가 이상이었다. 그와 함께 '자신감+당당함'도 가득했다.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해서 , 최소 이 정도 학교는 가 줘야 하죠.'라는 '자식 부심' 이 한껏 있다. 


나도 그런 엄마들이 부러웠다. 


"어머님, 영어는 즐기면서 하는 거죠. 외고 , 민사고 다 필요 없어요." 라고 학부모들에게 상담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꼭 --중학교에 보내야지. 영어를 내가 가르치니, 최소 외고는 가 줘야지. 다들 놀면서 이 정도 하고, 학원도 안 간 애가 공부 잘하고. 그럼 놀래겠지? 나를 얼마나 부러워할 거야.' 




아들의 중간고사 성적표는 본 적이 없다. 기말 고사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내신 총점표도 본 적이 없다. 지나치게 친절한 아들은 내게 일일이 다 알려 준다. 아들의 점수를 들을 때마다 표정 관리가 안 돼서 무척 힘들다.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전교 등수는 절반에서 뒤 쪽이 더 빠르고, 솔직히 이번 학기에 새로 수정된 점수와 등수는 모르겠다. 

등수는 원칙적으로 중학교에서 공개하지 않지만, 이 학교 엄마들은 '석차 비율, 이 비율이면 얼마나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갈 수 있다.'라는 통계치를 갖고 있다. 

물론, 나는 예외이다. 본의 아니게 예외가 되었다. 


나와 내 아들은 이 학교의 '루저'이다. 

아들 말로는, 자기처럼 공부 안 하고 학원 안 다니는 애는 없다고 했다. 주중에 그렇게 한가하게 운동 다니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애는 없다고......



아들이 중간고사를 봐야는데, 선생님들이 준  요약 학습지가 다 사라졌다고 했다. 보기 싫어서 버린 건지, 무슨 종이 인지도 몰라서 버린 건지 모르겠다. 


한문 14점 

수학 60점 

국어 68점 

.....

다행히 빵점은 없었다. 

공부를, 아니 교과서를 한 번도 안 봤으니, 어쩌면 당연한 점수다. 놀랍지도 않다. 

예상보다 잘 나와서 놀랄 뿐이다. 




아들과 달리, 나는 요새 계속 빵점을 받고 있다. 


나름 공부도 하고, 매주 병원에 가서 전문 선생님께 비싼 돈을 내고 배운다. 관련된 영상은 한국, 외국 모두 저장해서 틈나는 대로 본다.  필기능력도 좋아서 형형색색의 펜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긴장을 늦추기 위해서,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한다. 공부하는데 오는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일부러 돈 내고 운동도 등록했다. 하루에 최소 1권은 책을 읽는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기도로 시작한다. To do list를 만들어서 매일 실천하고 채워간다. 좋은 습관, 요령, 방법은 모두 따라 한다. 



그런데 매번 불합격이다. 


'엄마 자격시험'에서! 

단 한 과목이라도 빵점이 없으면 좋은데, 죄다 빵점이다. 


'수용력, 인내력, 공감 능력, 대화 능력, 관리 능력, 관찰 능력, 양육자의 정신 상태, 인지 능력, 사과할 줄 아는 표현 능력... 과목도 많긴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빵점이 아닌 것이 없다. 


'1등은 아니어도 좋으니, 평균이라도 가면 좋겠어......' 



엄마 자격시험에서 오늘도 나는 최악의 점수로 '불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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