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섭식장애는 내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주었다.
정신과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 의사는 수많은 환자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야 하지만,
보험처리조차 안 되는 비싼 병원비는 대체 왜?라는 궁금증.
생각보다 47세의 내가 약한 존재였다는 것.
생각보다 내가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는 것.
생각보다 나는 1주일에 한두 번 병원 가는 것도 귀찮아하고 있다는 것.
'아프지만 않음 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은 순 거짓이었음을.....
생각보다 나는 열등감에 가득 찬 인간이었다는 것을.
생각보다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보다 나는 아들의 '병' 앞에서 '아들'보다 '나'의 자리와 남들의 시선을
더 생각했다는 것을...
아들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기에, 몸으로 자신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속세에 찌든 나는, 그런 순수함도 없어서
오직 '아집과 이기심, 열등감과 위선'으로 나를 포장했다.
'아닌 척' , '센 척' , '멋진 척' 하면서....
섭식 장애 3년 차,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아들과 나의 삐걱거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아들.
새벽녘까지 공부를 한다는 아들을 기다려 줄 정신력은 있을 줄 알았다.
'체력 이 없으면 강한 모성애라도 있을 거야.'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착각이었다.
잠들어서 아들이 온 줄도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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