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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Dec 30. 2022

아버님, 죄송한데 다른 데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개 짖는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누워서 침 뱉기'-정말 해 봤다. 궁금했다. 침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나이 46살이 되니, 겁도 없어지고, '배 째' 정신도 더 세지는 것 같다. 

일명, 아줌마 정신이라고 할까?

누워서 침을 뱉어 보니, 볼상 사납게 침이 입 주변에 묻는다. 침은 제대로 위를 향해 뿜어 보지도 못한 채, 내 입가 주변에 묻었다. 아무도 안 봤으니 괜찮다. 침냄새가 좀 기분 나쁠 뿐이다. 곧바로 세수를 했다. 다시 얼굴이 깨끗해졌다. 


'그래, 닦으면 되지 뭐...'

누워서 침 좀 뱉어 보려 한다. 마음껏....

한 번 뱉어선 속이 안 풀릴 것 같다. 대 여섯 번, 아니 열댓 번.




아들의 친가가 좀 특이하다. 시골 학교의 평범한 교사인 아들 큰 고모는 '사교육'에 광신도다. 그 집 아이들은 우리나라에 굵직굵직한 영재 프로그램과 각종 뉴스에 종종 등장했다. '영어천재', '시골 학교에서 영어 토익, 텝스 만점, XX 영어말하기 대회 대상' 등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좀 비겁하긴 한데, 스스로 혼자서 영어 학원, 과외 없이 잘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교육의 힘을 받고, 스피치 대회에서는 내 도움이 컸다.)


청심중학교, 대한민국의 모든 영어 시험 만점, 그리고 민족사관고등학교. 미국의 우수한 대학교 입학.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배가 아픈 것도 있고, 내 교육관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영어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 치맛바람이 싫다. 

내 영어 교육은 진짜 '언어교육'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유학생, 주재원 모두에게 '언어'를 가르치려 한다. 

(그래서 일타 강사가 안 되었나 보다.)


아들 큰 고모가 하는 교육방향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학원 맹신, 학교는 뒷전, 사교육과 선행은 기본, 특목고를 가려면, 미국에 있는 우수 대학을 가려면 선행 3년은 기본, 미국을 가기 위해서는 압구정 출장 과외도 언제든 환영, 방학이면 아예 압구정동에 방을 잡고 지내기' 등등. 

엄청난 정보력, 헌신, 교육비가 전혀 안 아까운 것이 그 집 아이들은 엄마 말을 착하게 잘 따른다는 것이다. 본인들 스스로 공부 욕심도 있어서 성과도 훌륭했다. 



문제는 우리 아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이다. 

'고모네 ~는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해요.' '대한민국 1등', '천재, 장학금도 타고.' 

'엄친아, 엄친딸'의 대표들이 사촌인 아들에게 졸지에 '그들처럼 공부를 잘해야 한다.'라는 책임감과 의무가 생겼다. 


"너는 우리 집에 장손이야. 네가 공부를 잘해야 하지. 안 그러냐?"


"네, 할머니."


"무조건 1등이야. 할머니는 공부 잘하지 않음 싫어.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 해. 욕심."


"네."


"알았지? 공부 잘하지 않음 미워할 거야. 할머니 외손자들 많아. 외손자들이 다 공부 잘해서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가 공부 못하면 싫어."




초등학교 때는 '네, 네'를 참 잘했던 모범생 아들이 중학생이 되니 '네'라고 말한 뒤에 꼭 한숨을 쉰다. 

설상가상으로 애아빠가 아주 가관이다. 


"아들, 아들은 경찰대 가자."


"네?" 


"아빠가 보니까, 경찰대나 사관학교가 남자한테는 최고야. 너네 엄마가 그랬잖아. 경찰대에서 직접 학생들 가르쳐 보니 그보다 좋은 게 없다고."

(내가 경찰대에서 수업을 했을 때, 이혼하기 전에 남편에게 했던 말이다. 품위유지비, 대한민국 남자들의 골칫거리인 군대, 안정적 삶, 고위공무원으로의 길, 해외 우수 대학으로의 유학 등등 솔직하게 말해서 좋은 조건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들, 경찰대 싫으면, 검사할까? 아니면 의사? 너랑 딱 어울려."


'이보세요, xx 아버님, 당신 아드님은요, 전형적인 문과이고요, 주사 바늘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아이예요. 피나는 것도 못 보는 애한테 무슨 의과인지. 대체 아드님이 뉘신지요?' 


애아빠가 아들을 앉혀 놓고 상담이랍시고 하는 것이 꼴 사납다. 공부를 꽤나 잘했던 애 아빠는 의대를 못 간 게 한이 되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공대를 선택한 자신이 너무 후회스럽다면서 아들에게 5년 계획을 짜준다. 



거식증이 오자 아들은 공부를 점점 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책가방을 갖고 학교에 왔다 갔다 했다. 필통도 안 갖고 다녔다. 볼펜 한 자루. 수정펜. 

(하긴 자존감의 끝없는 추락, 우울증이 그토록 심하게 왔는데 무슨 공부가 되겠니?)

애아빠는 그런 아들과 사이좋게 스터디 카페를 가고 커피숍을 간다. 노트북을 갖고. 


"아들, 잘 봐. 이게 아빠 5년 계획이야. 너는 뭐가 되고 싶니?"


"저는 중1 때는 뭣도 모르고 농구선수이었는데. 피지컬 문제로 안 될 것 같고요.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 사업가? 그럼 어떻게 해야지? 대학교를 가야 하잖아. 어디 갈 거야?"


"이왕이면 좋은 데 가야죠. 정신 차렸으니.."


"그렇지? 그만큼 방황했으니까. 연세대 경영학과, 좋다. 그렇지? 제2안은?"


"아빠, 아직 생각 중이에요."

...............


"그럼, 아빠 말대로 해 봐. 검사 멋지잖아."


"아빠는 제가 검사했으면 좋은 거죠?"


"아니야. 아빠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어. 자, 이제 우리의 5년 플랜을 여기다 입력해 보자."



일주일 전에 다녀온 병원에서 상담 선생님은 아들이 몸무게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먹는 것도 잘 먹는데, 여전히 하루에 몇 번씩 토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애들 아빠한테 가능한 차분히 아들의 상태를 전달했다.


"뭐, 맨날 힘들데?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남자 새끼가 너무 약해 빠져서.. 네가 그렇게 오냐오냐 해서 그래. 나중에 어떻게 사회 생활 하려고 그러는 건지. 당장 학원도 다니게 하고, 과외도 시켜. 해 봐야지."



'씨 x.. 제가 욕을 안 하고 싶은 데요, 저기요, XX아버님! 아직 댁의 아드님이 토를 계속하고요, 약도 드셔야 하고. 병원에서도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불안증이 너무 심해서요. 5년 계획 짜실 데가 아닌데요. '


병원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네가 몸무게가 몇 킬로 그램이 나가도, 대학을 가든 못 가든,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인기가 있든 없든 아빠 엄마는 너를 무조건 사랑해'라는 마음을 심어 줘야 한다고. 



"아버님, 죄송한데요. 다른 데 알아보세요. 아드님이 그렇게 좋은 대학 갈 성적이 현재로서는 아니에요. 그냥 애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버려두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밖에 코칭을 못 해드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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