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석출(水落石出) 1

by 몽중몽
水落石出 : 강물이 줄어서 바닥이 드러난 풍경.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의혹이 풀림. 숨겨졌던 사실이 드러남.


*


이른 새벽, 승상부인 우(玗) 씨는 오랜만에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병약한 몸이지만, 손에 쥔 서신을 보는 눈빛만은 예리하고 독했다.

특징을 알 수 없는 또박또박한 필체로 쓰인 서신에서는 별채의 이상한 상태를 건조하게 열거하고 있었다. 단순한 보고서 형식의 글이었지만, 우 부인은 한눈에 그 안의 기류를 읽었다. 누군가 어린아이를 노렸고, 그 사실을 그녀 모르게 안채에 알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글자를 노려보다가, 입가에 서늘한 웃음을 띠었다.

“허……감히.”

우 부인은 서신을 구겨 쥐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시중들던 시녀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들자,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것을 누가 가져왔더냐?”

시녀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마님, 그……누군가 안채 뜰에 던져 놓고 갔다고……하옵니다.”

우 부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깡마른 손가락이 종이를 바스러지도록 움켜쥐었다.

“내가 누워 있으니 종이호랑이라 여겼나 보구나. 사실이든 아니든, 도를 넘은 것들이 있겠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준비를 하거라.”

시녀들이 다급히 말렸다.

“마님, 아직 몸이 좋지 않으시니…….”

“제발……보중 하십시오…….”

“내가 나설 때와 누울 때는 내가 정한다. 빨리 준비나 하거라!”

우 부인의 꾸짖음에 시녀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 시각, 별채에서는 영유가 아침상을 받고 있었다.

낙리는 그 곁에서 조용히 시중을 들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간식을 가져다 드릴까요, 도련님?”

언제나처럼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 고맙…….”

영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인 한 명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도련님!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순간 별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영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준비를……준비를 해야……!”

영유가 어쩔 줄 몰라하는 와중, 우 부인이 별채 안으로 들이닥쳤다. 병색이 짙게 드리운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영유는 허둥지둥 뛰어나가 우 부인을 맞았다. 어린 목소리가 떨렸다.

“어, 어서 오십시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차가운 시선이 영유를 꿰뚫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겨우 말을 이었다.

“마……님.”

우 부인은 더 이상 영유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의자와 담요, 화로를 가져오너라.”

마루에 자리를 잡은 우 부인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이곳의 하인과 노비들, 그리고 저 아이의 호위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라. 그리고 별채를 샅샅이 뒤져보아라.”

분위기가 단숨에 경직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어쩔 줄 몰라하는 가운데, 낙리가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송구하오나, 무슨 일로 이러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우 부인의 시선이 낙리를 꿰뚫었다.

“넌 누구냐?”

“별채의 식객입니다. 이름은…….”

“그러면 저 어린애 시중드는 하인이나 다름없거늘. 어디 감히 입을 여느냐! 물러나거라.”

우 부인의 호통에 낙리는 공연히 나섰다가 경을 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낙리에게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낙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용히 물러났다.



우 부인의 명령 아래, 별채는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살벌한 분위기 속 시간이 흘렀고, 잠시 후 우 부인의 하인들이 무언가를 고하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일단 그 장소를 담당하는 것들을 다 끌어내거라. 그리고 다들 매질부터 해라. 입을 열기 전엔 피를 봐야겠다.”

영유 옆에서 서 있던 낙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매질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제야 진심으로 놀랐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우 부인을 끌어들인 건 실수였나.’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지니 이 계획을 제안한 염온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비명과 피, 공포 속에 영유는 낙리에게 매달렸다.

낙리는 벌벌 떠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과 귀를 막아주었다.


*


잠시 후, 소식을 전달받은 추홍이 별채로 급히 달려왔다. 그는 피비린내와 아우성으로 가득한 광경을 보고는 우 부인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도 잊고 굳어져 버렸다.

하인과 노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우 부인은 태연자약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별채 사람들이 무얼 잘못하였기에 이러시는 겁니까?”

추홍이 우 부인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를 무시하며 계속 처벌을 강행했다. 추홍이 계속 따져 묻자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자네가 왜 나서는가? 승상부의 속관(屬官)이 사저(私邸)의 일에 왜 관여하지?”

추홍은 말문이 막혔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렇게 아랫사람들을 함부로 상하게 하면 승상대인께 누가 될 것입니다.”

우 부인은 웃으며 빈정거렸다.

“자식이란 것들이 서로 죽자사자 싸우는 것이 더 누가 되겠지.”

“그것이……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침 잘 되었다. 회(恢)와 사(嗣)를 데려오너라.”

“두 분 다 등청(登廳)하셨습니다.”

“회는 병영(兵營)에 있을 것이고 사는 대리시(大理寺)*에 있느냐?”

우 부인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관청이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야 마땅할 것이 대리시 소경(少卿)**이라…….”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진정하십시오.”

추홍은 황망히 설득을 시도했지만, 우 부인은 지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피곤하니 일단 돌아가겠다. 남은 일은 정리해 두어라. 자백한 것들은 가두고.”



우 부인이 떠난 후에도 별채에는 여전히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피 흘린 사람들은 끌려가거나 방으로 실려 갔고, 바닥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추홍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모두 두려움에 말이 없었다.

그는 낙리에게도 질문하였지만, 낙리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영유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영유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작은 형이……날 죽이려 한 것이냐?”

그 말에 별채 안이 더욱 조용해졌다.

추홍은 당황하며 영유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방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영유는 잠시 머뭇거리다, 훌쩍이며 말했다.

“……하인들이……작은 형이 나를 해치려고 했고, 그걸 큰 형에게 뒤집어씌우려 한 거라고 했어.”

그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또렷했다.

“마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작은 형은 교활하고, 큰 형은 어리석어서 좋은 표적이라고…….”

추홍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도련님들끼리, 설마…….”

그러나 영유는 추홍의 말을 자르듯 고개를 저었다.

“다들 그렇게 말해. 정말로……작은 형이 그런 사람이라면……어쩌지?”

“아닙니다, 도련님.”

추홍은 무릎을 꿇듯 앉아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달랬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어른들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거나, 누군가가 헛된 말을 꾸며냈을 거예요. 마님께서도 화가 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겠지요.”

하지만 영유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말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추홍은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쉰 후, 곁의 하인을 향해 명했다.

“당장 승상대인께 보고를 올려라. 그리고 큰 도련님과 작은 주인님께도 연락을 넣어라.”

그는 고개를 돌려 낙리와 호위들에게도 지시했다.

“당분간 도련님 곁을 한시도 비우지 말고, 누가 접근하든 반드시 막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낙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추홍은 다시 모두를 향해 경고했다.

“지금 이 일은 아직 밝혀진 바 없으니, 누구든 함부로 말하지 말도록. 입단속 못한 자는 중죄로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곤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돌아섰다.

“……이 일은 내가 직접 대인께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군.”

그는 무겁게 걸음을 옮기며 별채를 떠났다.

낙리는 잠시 영유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아이의 등을 감쌌다.

“도련님, 방으로 가실까요. 조금만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낙리는 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란은 모두 막힌 듯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낙리는 영유에게 물을 건네고 침상에 자리를 잡게 한 뒤, 작은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

“괜찮습니다. 도련님은 무사하셨잖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서운 꿈이었다고 여기셔도 돼요.”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그의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어 확인하듯 잠시 머물렀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낙리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별채에서 꾸민 수작만이 아니었지.’

배가 가라앉았던 ‘사건’은 단순한 ‘사고’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낙리는 알고 있었다. 그 일에는 분명히 영사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가려졌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사고가 ‘우연’이어야만, 낙리가 영유를 구한 사람이라는 배경으로 승상저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고’는 누군가의 음모가 아닌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치부되어야 했다.

낙리는 조용히 입가를 올렸다.

‘그 사고를 꾸미는 데 꽤 공을 들였을 텐데 말이지. 조사 결과가 단순한 우연으로 결론 났으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그 난리를 치고도 무위(無爲)로 돌아갔으니.’

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한 번 실패했으면, 일단 몸을 사리는 게 수순 아닐까? 그런데도 곧바로 또 움직이다니. 어리석은 건지, 성실한 건지 모르겠군. 아니……악착같은 건가.’

낙리는 이불 위에서 잠든 듯 눈을 감은 영유를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가엽기도 하시지…….”

그 말투는 그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 대리시(大理寺) : 형벌과 감옥을 담당하던 관청.

** 소경(少卿) : 대리시, 위위시, 소부시, 예빈시 등 관청의 차관. 경(卿)의 아래.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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