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run)’이라 하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사람들을 떠올리지만, 내 인생의 런(run)은 조금 다르다. 나의 런(run)은 ‘운전대 잡기’였다. 운전면허증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날부터, 내 인생은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나는 남들처럼 운전면허를 땄다. 그리고 그 면허증은 20년 동안 지갑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면허증은 신분증의 다른 이름일 뿐, 차를 몰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서울에서, 차 없이 사는 것은 그리 불편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집안 사정으로 차를 운전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제야 나는 부랴부랴 차를 사고, 20년 만에 다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년의 일이었다.
도로주행을 시작한 첫날 범퍼가 긁혔고 한 달도 안 되어 주차된 오토바이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타이어 펑크가 났다.
이것이 첫 운전의 출발점이라니 망연자실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는 게 런(run)의 기본이니까.
처음 몇 달은 집 근처만 반복해서 돌았다. 익숙한 도로에서만 핸들을 돌리며 조금씩 감을 되찾았다. 그러다 범위를 넓혀 교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운전 학원 강사가 “시내보다 고속도로가 더 쉽다”라고 했을 때는 믿지 않았는데, 막상 달려보니 정말 그랬다. 속도를 내는 것이 무서울 뿐, 신호와 차선이 복잡한 시내보다 고속도로는 단순했다. 단지, 내 손이 그 속도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운전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는 어설프게 자신감이 생겼을 때라고 한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속도에 익숙해지고 나니, 조심스럽게 한 발 더 나아가 보고 싶었다. 좀 더 멀리, 좀 더 빠르게.
그렇게 작년 겨울, 속초가 떠올랐다.
전날 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 마음을 따라 출발했다.
서너 시간을 달려 도착한 속초 바다에서는 생각보다 짧게 머물렀다. 두 시간쯤 바다를 바라보다가, 같은 길을 되돌아 서울로 돌아왔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짧은 바다의 파도 소리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드라이브는 내게 ‘도망’이자 ‘치유’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차를 몰고 나갔다. 경기도, 인천, 혹은 이름 모를 시골의 작은 길까지 달렸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느슨해졌다.
몇 달 전, 다시 용기를 내 속초로 향했다. 이번에는 한여름이었다. 도로는 꽉 막히고, 에어컨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휴게소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중간쯤에서 깨달았다. 초보 운전으로 당일치기 강원도 여행은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돌아갈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오기 같은 게 생겼다.
결국 다섯 시간을 꼬박 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바다는 사람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덜 막혔지만, 서울에 도착하니 이미 한밤중.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그 피곤함 속에서 묘한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비록 서툴고 느려도, 나는 나름대로 달렸으니까.
물론 아직도 내 차 뒤에는 ‘초보운전’ 표식이 붙어 있다. 운전은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고, 주차는 여전히 숙제다.
내 인생의 런(run)은 남보다 빠르지도 멋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속도로 달려왔다.
넘어지고, 멈칫거리고, 때로는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나의 런(run)은 누가 봐도 느리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한, 그건 여전히 달리기다.
다음 목적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다시 출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