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ive Vibes

당신의 페이스메이커는 누구인가요?

내 인생의 런, 육아 레이스.

by 정짜리

늘 깔깔거리는 제 친구 미니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나는 지금 레이스 중이다. 아이를 낳는 출발점에서 시작한 '육아'라는 길고 긴 레이스. 경험한 적도, 훈련한 적도 없는 이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할 전략은 단 하나밖에 없다. 유능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뛰는 것. 운 좋게도 나에겐 그런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녀는 땡그래진 눈으로 말했다.

“너두? 대박!!! 나도 임신했어!!!”

나이, 직업, 성격, 취향까지 늘 나와 잘 맞아서 이삼십 대를 함께 보낸 시간으로 가득 채운 친구였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2010년 2월의 어느 날이었다. 승무원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입사 첫날 머리를 풀어헤지고 화장도 제대로 안한 탓에, 훈련원 강사에게 지적당하고 교실 뒤쪽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서 귀에 있던 피어싱을 빼던 사람이 그녀였다. 그녀 역시 나처럼 회사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출근 첫날 일곱 개의 피어싱을 하고 나타난 신입이었다. 한 거울을 마주 보며 머리를 묶던 나와, 피어싱을 빼던 그녀는 거울 속에서 눈을 마주치며 처음 만났다. 그런데 이제 임신과 출산까지 우리는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절친과 함께 하는 출산과 육아라니,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었다. 코로나 시기여서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당시 훈련과 경기 일정으로 늘 집을 비웠던 남편으로 인해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늘 혼자였다. 외로울 수 있었던 그 시기를 나는 친구와 함께 보냈다. 우리는 마지막 자유를 누리는 심정으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들고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며 이태원이며, 압구정이며 여기저길 돌아다녔다. 그녀는 출산 준비를 귀찮아 하는 내게 출산준비물과 꼭 사야 하는 육아용품을 알려줬다. 임신하며 생기는 몸의 변화와 호르몬 과다로 인한 감정의 변화까지 가장 잘 이해하며 다독인 것도 그녀였다. 겨우 2주 먼저 임신한 그녀였지만, 그녀는 심리적 안정감 제공과 페이스 조절능력까지 갖춘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였다. 그녀가 없었다며 나는 임신과 동시에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와 임신 기간을 버텨낸(?) 그녀는 나보다 정확히 하루 먼저 아이를 낳았다. 출산의 모든 것을 나보다 하루 먼저 겪어내며 나의 출산멘토가 된 그녀는, 나에게 생생한 팁을 주며 출산과 회복의 과정에서 나를 이끌었다. 우리 둘 다 처음으로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 몸도 내 몸 같지 않은데, 미생물 같은 아이를 당장 책임지라니. 그때는 매일매일이 어렵고 당황스러웠다. 혼란 속에서 같은 고민을 함께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아이가 50일이 됐을 즈음,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정확한 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를 풀 듯 주어진 답을 찾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갑자기 풀 수 없는 어려운 논술문제가 앞에 놓인 것 같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이 시련 앞에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몰랐고, 이제 50일이 된 아기를 안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너진 나를 가장 먼저 찾아와 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도 아이 낳은 지 50일 된 산모였지만, 나와 아기를 보러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녀는 내가 편히 울 수 있게 같이 호들갑 떨며 슬퍼해줬고, 내가 기운 차릴 수 있게 든든한 밥을 사줬다. 하루 종일 나와 있어 주고 내 아이를 안아주다 저녁이 돼서야 집에 있는 그녀의 아이를 보러 돌아갔다. 그 단순한 위로에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힘을 냈는지 그녀는 알까. 지금도 글을 쓰며 눈물이 핑 돌 정도이다.

나의 페이스 메이커는 암흑 같은 그 시기도 같이 달려주었다. 그녀로 인해 나는 뒤쳐질지언정 주저앉지 않았고, 체력도 회복해 이제 일정한 페이스도 유지하며 목표 기록까지 세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매년 아이들의 생일파티도 함께 하고, 성별이 다른 아이들에게 각자의 로망을 실현하듯 취향을 담은 옷과 신발도 선물한다. 우리 아이들은 욕조에서 목튜브 낀 첫 수영도 같이 하고, 가을에 낙엽을 밟는 일도, 농장에서 시금치를 캐는 것도, 해변에서 연날리기를 하는 것까지 모든 처음을 같이 해나가며 크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의 육아 레이스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었듯, 나도 그녀에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일하느라 바쁜 그녀를 대신해 9월 말부터 시작된 아이들 독감 접종도 내가 먼저 알려주고, 그녀의 유모차도 당근 온도 높은 내가 팔아주고, 서울형 키즈카페 예약창이 열리면 잽싸게 먼저 공지해 주는데... 이쯤 되면 나도 조금은 제 몫을 하는 것 같긴 한데 말이다. 오늘은 한번 그녀에게 물어봐야겠다.

일곱 개의 피어싱을 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너는, 지칠 틈도 없이 나를 끌어 주었는데 나는 네 옆에서 조금의 바람이라도 막아 주었는지 말이다.


힙시트와 함께했던 우리의 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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