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살지기(肅殺之氣) 2

by 몽중몽

*


정오의 햇살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다.

낙리는 별채를 향해 걸으며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영유와 만나는 것은 오늘로 닷새만이다.

소태사와 만난 직후 그대로 앓아누웠다.

이틀은 식음을 전폐했고, 나흘째에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속은 메스꺼웠고, 머릿속은 진흙탕처럼 탁했다.

하지만, 더 누워 있다간 이 저택에서의 자리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막내 공자 앞에서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심호흡을 하였다.

‘들키면 안 된다. 무엇도.’

별채로 향하던 발길이 멎은 것은 후원(後園) 쪽에서 날카롭고 높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 따라해! 멍청이! 안녕! 주인님!

낙리는 걸음을 멈췄다.

‘앵무새……?’

곧 그의 걸음은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연못가 평상에 영 승상과 두 아들이 앉아 있었다. 사이에는 작은 다과상이 놓여 있었다.

옆에 선 하인이 새장을 들고 있었고, 그 안에서 앵무새가 깃털을 부풀린 채 소리쳤다.

― 멍청이! 안녕! 주인님! 하세요!

낙리는 조용히 담장 쪽으로 걸어가 멀찌감치 서 있는 호위무사들과 하인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인이 허둥지둥 호두를 꺼내어 새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자, 자…….”

새의 부리가 호두를 박살 내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주위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영유는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귀 끝이 붉었다.

승상은 반대로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었고, 영사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동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귀한 새를 멋대로 데리고 놀더니만……. 말버릇이 이게 무엇이냐.”

영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하, 괜찮다.”

승상이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새의 기세가 좋구나.”

어색한 공기가 조금 풀렸다.

“다만, 설 즈음에 궁에서 사람이 나와 이 새를 보고 갈 것이다. 그전에 제대로 교육시켜 두어라.”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황상의 하사품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소리가 나오면 곤란하다.”

영유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예.”

승상은 잠시 연못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두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내년이면 막내는 조정을 밟을 것이고, 둘째도 다시 자리를 찾을 것이다. 아비의 얼굴이 부끄럽지 않도록 둘 다 정진하거라.”

“예.”

“예.”

두 목소리가 간격을 두고 겹쳤다.

“그리고…….”

승상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너희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공기가 가라앉았다.

“과거 이 아비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물론 손을 내밀어 준 이들의 은혜를 어찌 잊겠느냐. 그 은혜는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할 것이다.”

영 승상은 잠시 회상에 잠긴 듯했다.

“그러나 그 엄혹한 시절을 끝내 버티게 해 준 것은, 언젠가 가족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바람이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형제간의 우애를 잃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아끼며 지내도록 하여라.”

“예.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두 형제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낙리의 눈에는 보였다.

영사가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가 다시 내리는 것이.

영유가 연못가의 빛바랜 갈대를 바라보는 것이.

영 승상은 눈치챘을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일까.

그는 그저 온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낙리는 생각에 잠겼다.

‘둘째공자를 기어이 복직시키려는 것인가. 부하들도 반대하는 일이라 들었는데…….’

앵무새가 새장 안에서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연못가에 울렸다.


*


승상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영사와 영유는 곧장 일어나 아버지에게 예를 갖추었다.

승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채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호위와 하인들이 자연스레 길을 열었다.

승상이 떠나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영사가 먼저 몸을 돌렸다.

동생을 보지 않았다. 말도 없었다.

영유도 말이 없었다.

두 형제는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낙리는 별채로 향하는 무리 뒤에 조용히 붙었다.

걸음마다 몸이 무거웠다.

“낙리.”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자 낙리는 고개를 돌렸다.

염석이 호위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낙리의 곁에서 걸음을 맞추었다.

“몸은 좀 어때? 얼굴색이 아직 별로네.”

염석의 염려 섞인 말에 낙리는 옅게 웃었다.

“덕분에 많이 나았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아진 게 그 얼굴이면 어제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낙리는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저녁에 댁에 들러도 되겠습니까?”

염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 만나러 오는 거야?”

낙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염석의 얼굴에 반색하는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요즘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누나가 나중에 말해준다고만 해서……둘 다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

낙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별일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었다.



별채의 담장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앞서가던 영유가 걸음을 멈추고 낙리를 돌아보았다.

낙리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낮추었다가 다시 들었다.

“리야.”

영유는 몇 걸음 되돌아와 낙리의 앞에 섰다.

낙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몸은 괜찮으냐?”

영유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배어 있었다.

“지방까지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돌아온 후로 며칠이나 아팠다며?”

“이제는 괜찮습니다, 도련님. 염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오늘 병문안을 가려고 했어. 그런데 네가 오겠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그만뒀지.”

영유가 한숨을 쉬었다.

“걱정 많이 했다.”

낙리는 짧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정적이 흘렀다.

낙리는 눈을 들어 영유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느린 어조로 말했다.

“키가 많이 크셨습니다.”

영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띠었다.

“새삼스럽게 무슨 말이야.”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세 치는 더 컸지.”

“처음 뵈었을 때에는……참 작으셨는데.”

낙리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어렸다.

바람이 지나갔다.

회색빛 하늘 아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이제 나도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거야?”

영유가 헛웃음을 쳤다.

“또 잔소리하려고?”

낙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았어. 어른스럽게 행동하겠다.”

영유는 다시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깨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낙리는 묵묵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어느새 입가에 있던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염석은 낙리의 얼굴을 힐끗 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낙리도 걸음을 옮겼다. 영유를 따라서.

나뭇잎이 또 한 장 떨어졌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다가, 결국 땅에 내려앉았다.

누군가 그 위를 밟았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염온의 방은 등잔불 하나로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다.

정적만이 감돌았다.

낙리와 염온은 마주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는 찻잔이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들지 않았다.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낙리가 입을 열었다.

“저연의 묘에 갔을 때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막내공자가……알고 있었더군요.”

염온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낙리는 웃었다. 입가에만 걸친 웃음이었다.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이 더 있었다는 것……그 정도만.”

염온은 입술을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것뿐입니다.”

낙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미안함은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면……인간이 아니겠지요.”

그는 서늘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것뿐입니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로 괴로워하거나 고민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뭐, 정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기는 했습니다만.”

염온은 눈썹을 찌푸렸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입술이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눈빛은 복잡하게 흔들렸다.

낙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조가 비틀렸다.

“사람이 어떻게 죄책감을 계속 안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가는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지요.”

낙리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저는…….”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저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등잔불만이 흔들리며 희미한 빛을 흩뿌렸다. 식어버린 찻잔 위로, 어둠이 짙게 깔려갔다.

낙리는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목소리가 떨렸다.

“주인을 찾지 못해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염온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돌아왔을 때 본 것은…….”

낙리는 느린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병사들의 칼에 가족들이 죽는 광경이었습니다.”

염온의 눈이 커졌다. 숨이 멎는 듯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졌다.

“그때 저는…….”

낙리가 말했다.

“그저……떨면서 숨어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더 처연했다.

“이후로 그날 밤의 일을 매일 같이 꿈속에서 보았습니다. 아니, 깨어 있어도 때때로……눈앞이 캄캄해지며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낙리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주인이 데려간 동생도 죽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나만 살았는지. 왜 하필……나만.”

낙리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그런데 막내 공자를 만나고, 추 장사를 보고, 승상을 보게 되고……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낙리는 서늘하게 웃었다.

“저는, 가족들의 피를 갚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라고요.”

염온은 눈을 내리감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도련님을 모신 지가 3년이 넘었습니다.”

낙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어린아이였던 도련님이 이제는 훌쩍 컸습니다. 내년에는 관례도 치를 겁니다. 애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신기하더군요.”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데 제 동생은……영원히 아이도 될 수 없고, 어른도 될 수 없습니다.”

낙리는 다시 웃었다. 공허한 웃음이었다.

“승상의 자식 하나는 먼저 죽었고, 자식 하나는 출세길이 막혔지요, 하지만 막내아들이 잘 자랐으니 위안이 되고 있을 겁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못난 자식이라도 어떻게든 보듬어 주려는 것이 부모지요.”

낙리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제 부모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자식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지만요.”

낙리는 찻잔을 들었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다.

“부모의 원수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이라 들었습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면……내가 죽든 원수가 죽든 해야 하는데.”

그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염온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막내 공자는 아기였습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낙리가 즉각 답했다.

“제 동생과 동갑이었으니까요.”

염온이 다시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낙리가 먼저 말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변했다.

“도련님께는 죄가 없다는 것은……잘 압니다.”



낙리는 차를 마셨다. 씁쓸하게 식은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앞으로 죄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이었다.



낙리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정적이 흘렀다. 길고도 무거운 정적이었다.

염온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손이 떨렸다.

“처음부터…….”

그녀는 낙리를 바라보았다.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등잔불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벽에 일그러지게 드리웠다. 밤은 깊어가고,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


이야기가 끝났다.

염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찻잔을 내려다보다가 등잔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낙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분명했다.

“그렇다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도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낙리의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낙리가 중얼거렸다.

“저를 동정하시는 건가요?”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염온은 잘라 말했다.

“당신과 당신 가족이 겪은 고통은, 마땅히 갚아져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염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추워도……남의 피로 몸을 덥혀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요.”

낙리는 염온을 한참 바라보았다.

“정말로…….”

눈빛이 흔들렸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진심입니다.”

염온이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염온은 낙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죄 없는 사람의 피를 보지는 마십시오.”

낙리는 일순 얼굴이 굳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염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창밖으로 동백나무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짙은 녹색 잎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붉은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었다.

아직 피지 않은, 굳게 다문 봉오리들.

그 위로 펼쳐진 밤하늘, 구름 사이로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차갑고, 먼 빛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봉오리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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