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연의 묘는 마차로도 한나절을 가야 하는, 도성에서 떨어진 깊은 산중이었다.
한낮임에도 어두웠다.
햇빛은 나뭇가지에 걸려 잘게 부서질 뿐 묘지까지 제대로 닿지 못했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낙엽이 천천히 떨어졌다.
하인들이 막 벌초를 마친 묘 앞으로 영유가 걸어갔다. 잘린 풀 냄새와 젖은 흙내가 섞여 공기 속에 감돌고 있었다.
영유는 상석(床石)으로 가지 않고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멈춰 섰다.
가까이 다가서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듯했다.
소복(素服)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소년의 시선은 묘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영유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조용한 목소리였다
“상중이라 절은 올리지 못합니다만……꼭 전해드릴 말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낙리는 영유의 뒤에 서 있었다. 시선은 땅을 향하고 표정은 철저히 눌러 담은 채였다.
이곳에 오기 전, 영유에게 넌지시 말했다.
“상중에 다른 이의 묘를 찾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소년은 손을 저었다.
“아버님께 여쭤봤는데 괜찮다고 하셨어. 어르신은 우리 집안의 은인이니까.”
‘……은인…….’
낙리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시선만 올려서 묘를 바라보았다.
‘상중(喪中)의 불길한 기운이라는 것이 있다면…….’
눈동자가 묘비 위에 머물렀다.
‘저기에 닿았으면.’
영유는 묘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어르신 덕에 제가 이렇게 무사히 자라났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는……혼사도 앞두고 있고, 관직에 나아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애써 담담한 어조로 이어갔다.
“상복을 벗는 대로 어르신의 위패를 저희 가문의 원당에 모시려 합니다. 그러면……수시로 찾아뵐 수 있을 거예요.”
영유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아버님께서 어르신의 추서(追敍)*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낙리의 눈썹이 일순 움직였다.
‘추서?’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하기야……저자의 다른 가족들은 다 죽었으니, 해줄 것은 그런 것 밖에 없지.’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막내 공자의 앞길을 위해서라면……승상도 그 정도는 하겠지.’
영유는 다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산바람이 한 번 더 불어와 흰 옷자락을 흔들었다. 나뭇잎이 또 하나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연 영유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어르신께서 저를 구하셨을 때…….”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어갔다.
“함께 죽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낙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알고 있었어?’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묘를 향해 서 있는, 하얀 소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리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이가 맞물렸다.
“그 사람들은……저 때문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영유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소년은 잠시 말을 멈췄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람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소년은 주먹을 꼭 쥐었다.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지켜주신 이 목숨을……부끄럽지 않게 쓰겠습니다.”
영유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낙리는 주먹을 쥐었다.
온몸이 떨렸다. 분노인지, 충격인지, 혐오인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피가 날 정도로.
그제야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을 열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낙엽이 묘 위에 떨어졌다.
영유는 묘를 향해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어르신.”
평온한 목소리였다.
낙리는 그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주먹 속의 손톱이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손바닥이 뜨겁게 타올랐다.
*
편전 안은 따스했다.
영안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노신(老臣)을 바라보았다.
“그리 서 있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황제가 곁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자, 소 태사는 황공한 듯 사양했다.
“신이 어찌 감히……. 당치 않사옵니다.”
“허허, 황명이오.”
황제가 다시 권하자 소 태사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요즘 날씨가 변덕스러워 몸조리가 어려운 때요. 불편한 곳은 없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직은 견딜 만하옵니다.”
“태사가 건강해야 짐도 마음이 편하오. 어의를 보내 약재를 전하도록 하겠소.”
“신은 폐하께서 내리시는 차 한 잔이면 충분하옵니다.”
소 태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귀한 약재는 나라의 동량들에게 내리심이 가당할 줄로 아옵니다.”
“얼마 전 승상에게도 보양할 약재를 내렸소.”
황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다향(茶香)과 함께 한동안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황제는 편안한 어조를 유지했으나, 공기는 서서히 밀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승상이 요즘 생각이 많은 듯하오.”
황제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소 태사는 시선을 들지 않으며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간관들이 또다시 병부상서의 탄핵을 거론하였소,”
황제가 혀를 찼다.
소 태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승상의 막내아들이 상복을 벗게 되면 병부로 들어갈 예정이라는 소문은 들었사옵니다.”
“짐도 들었소.”
“아비의 마음으로, 자식이 관직 생활을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시작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옵니다.”
황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승상이 아들을 위해 길을 닦으려는 것은 맞는 듯 하오.”
소 태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황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과거……승상의 아들이 폐주의 군사들에게 쫓기다가 부하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건이 있지 않았소?”
“그렇사옵니다.”
“그때 죽은 부하가 저연이라 했던가……? 승상이 그 사람을 추서하고 싶은 모양이오.”
소 태사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태연하였다.
“주종(主從)의 의리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승상이 예부(禮部)의 관리에게 넌지시 물었다고 하더군. 아마 아들의 출사 전에 직접 요청할 것 같소.”
소 태사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생각에 잠겼다.
황제는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
이윽고 소 태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말씀하시오.”
“그 일에 관하여 노신이 들은 바가 있사온데, 단언하기는 어려우나……꺼림칙한 점이 없지 않사옵니다.”
황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엇이오?”
소 태사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날 죽은 자가 저연만이 아니었다 들었사옵니다. 함께 있던 노비 일가도 죽었다 하옵니다.”
“그렇다 들었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연이 품에 안고 있던 아기 또한 죽었나이다.”
“……그렇지.”
소 태사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저연이야 자신의 선택으로 희생했사옵니다만……그 노비 일가는 왜 죽어야만 했을는지요?”
“주인의 뜻에 동참했거나, 혹은 휘말렸겠지.”
황제는 짐짓 한숨을 쉬었다.
“노비로 태어난 운명이 본래 그리 기구한 법 아니겠소.”
소 태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연과 그의 벗이, 그들을 일부러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어찌 그리 생각하오?”
소 태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들이……말해서는 안 되었기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소 태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저연이 안고 달아난 아기가……실은 자신들의 아기였다는 것을 말이옵니다.”
황제의 눈썹이 올라갔다.
편전에 정적이 흘렀다.
“사실이라면……참혹한 일이로다.”
황제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든 일이 승상이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을 리 없지 않소?”
“그러하옵니다. 심복들이 어찌 감히 주인 모르게 그런 일을 도모하겠사옵니까.”
한참을 조용하던 황제는 중얼거렸다.
“그리 말하는 증거가 있소?”
그러나 곧 스스로 답을 찾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있으니 그리 말하는 것이겠지.”
황제는 말을 이었다.
“짐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소. 승상이 저연의 충심만 기리고, 함께 죽은 노비들이나 아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며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 여겼지.”
“폐하의 영명하심은 참으로 일월과 같으십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이 자식까지 빼앗겼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군.”
소 태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아기를 바쳤다 해도 끔찍한 일이옵니다. 하온데 주인의 독선으로 온 가족이 그리 살해당하고 잊혀졌나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자신의 자식을 구하고자 타인의 핏줄을 방패 삼고 그 부모까지 입을 막았으니, 아무리 노비라 해도……그리 잔인한 처사가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승상이 그 일을 묵인했더라도 그는 이 나라의 공신이오. 그런 과오만으로 공신을 벌하거나 탄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 태사는 고개를 숙였다.
“하오나. 만일…….”
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만일 승상이 저연의 추서를 요청하며, 노비들도 자발적으로 희생한 것처럼 말한다면……그것은 기군(欺君)에 해당할 수 있사옵니다.”
황제의 손가락이 팔걸이 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승상이 그리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오. 다른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지.”
황제는 이내 느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승상의 아들이 언제쯤 출사하게 되는지……알아보아야겠소.”
그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소 태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편전 밖에서 차가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조용했다.
발소리만이 낙엽을 밟으며 울렸다.
다시 마차에 오를 때까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영유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묘에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낙리는 영유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시선은 마차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흔들리던 마차가 평지로 접어들었다.
낙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영유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응?”
그 순간, 옆에 앉은 호위가 낙리를 향해 눈을 흘겼다.
지금은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였다.
낙리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아까……묘 앞에서 하신 말씀은…….”
목소리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태사공께서 말씀해 주셨어.”
소년의 어조는 담담했다.
낙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작년에 뵈었을 때, 그때 말씀해 주셨어.”
영유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연 어르신께서 나를 구했을 때……동행했던 그 집안의 노비들도 모두 죽었다고 하셨어.”
영유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그들의 아기가 나를 대신해서 희생했다고…….”
소년은 창 밖의 하늘을 보았다.
“듣고도 믿기 어려워서, 아버님께 직접 여쭤보았어. 그런데……사실이었다.”
호위 무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분은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어린 도련님께 했단 말입니까?”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묻어났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례하구나.”
영유는 호위를 꾸짖었다.
“조정 원로께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호위가 황급히 사죄했다.
"송구합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신 거야.”
영유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기꺼이?’
낙리는 그 단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아무리 비천한 신분이라 해도, 그 마음만큼은 숭고했으니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영유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렇게 이어진 목숨이니,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리 말해 주셨어.”
낙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렇군요.”
목소리가 갈라질 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그는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입안에 번졌다.
‘기꺼이……라고?’
낙리는 가만히 이를 갈았다.
머릿속에 그날의 핏빛 광경이 떠올랐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느 부모가…….’
주먹이 떨렸다.
‘어느 부모가 기꺼이 어린 자식을 바치겠는가.’
입안에 피 맛이 번졌다.
입술을 깨문 것인지, 아니면 그날의 피 냄새가 되살아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러나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한 편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소 공께서는……왜?’
마차가 덜컹거렸다.
마차는 계속 나아갔지만, 낙리의 생각은 어딘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가을 풍경이 흘러갔다.
낙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 추서(追敍) : 죽은 뒤에 관작을 내리거나 품계를 높여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