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추섭동(綿秋涉冬) 2

by 몽중몽

*


서재는 고요했다. 벼루에서 희미한 먹 냄새가 풍겼고, 탁자 위에는 종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소 태사는 그것들을 하나씩 펼쳐보며 정리하고 있었다.

“이 책들은 아래 칸으로 옮겨도 될까요?”

책장 앞에 서 있던 소 부인이 물었다. 그녀는 오래된 책 몇 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하거라. 찢어지지 않게 주의하고.”

“예.”

소 태사가 두루마리 하나를 펼치려는 순간,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무슨 일이냐?”

“형부상서 댁 하인이 와서 편지를 전하려 했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거절하였습니다.”

“잘했다.”

소 태사의 대답은 간결하였다. 하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노인은 혀를 한 번 찼다.

“아까 왔을 때, 내가 몸이 불편하니 방문도 편지도 받지 않겠다고 분명히 전했거늘, 못 알아들은 모양이로구나.”

“그분께서도 의논할 곳이 없어 답답하실 텐데요.”

“그렇겠지.”

소 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만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자주 왕래한다.’, ‘무언가 꾸민다.’라는 소문이 바로 돌 것이다.”

“…….”

“형부상서는 형부의 일이나 묵묵히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늙고 병들어 집에 있으니 누가 뭐라 하겠느냐.”

소 태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각자 제 자리에서 본분만 지키면 된다.”

소 부인이 작게 웃었다.

“제가 돌아가는 길에 그 댁 부인을 만날까요? 아버지 뜻을 어떻게든 전하면…….”

“네가 내 딸인 것은 사람들이 다 안다.”

소 태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는 더욱 주의해야지. 쓸데없는 오해를 살 필요가 없느니라.”

소 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도 지금 시달리고 있을 것 같아요.”

손자의 이야기가 나오자 소 태사는 고개를 들어 딸을 바라보았다.

소 부인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한림원이 청직(淸職)이라지만, 이럴 때는 오히려 화를 부르는 자리 아닙니까.”

“황상을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이니 그 정도 부담은 당연하다.”

소 태사가 안쓰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잘라 말하자, 소 부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이번에는 그 애도 며칠 감기에 걸려야 할 것 같습니다.”

태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야겠구나. 이럴 때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상책이야.”

소 태사는 방금 펼친 두루마리 위의 글씨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그리고 곧 종이를 들어 빛에 비춰보며 덧붙였다.

“황상께서 정국을 구상하고 계신다. 그분께 방해가 되지 않게 다들 신중해야 할 때다.”

“예.”

다시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노인은 낮게 말했다.

“잘 풀려야 할 텐데.”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정리하는 손놀림이 평소보다 느렸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아버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슬슬 진지를 잡수시고 마저 정리하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소 부인의 목소리에 태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두루마리를 종이 더미 위에 올려놓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꾸나.”

딸과 함께 서재를 나선 소 태사는 하인에게 식사 준비를 지시하며 덧붙였다.

“그 사람에게 전갈을 넣거라. 승상저 안이 더욱 삼엄해질 것이다. 한동안 주의하라고.”

“예. 어르신.”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


어스름이 복도를 따라 스며들었다. 차가운 주홍빛 속에서 낙리는 영유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발끝이 슬슬 저린 것으로 보아 이렇게 기다린 지 한 시진은 넘은 듯했다. 그러나 낙리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시선은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만 아주 가끔씩 고개를 돌려 사랑채 쪽을 바라볼 뿐이다.

“낙 선생.”

지나가던 하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의자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한참을 서 계시는데…….”

“괜찮습니다.”

낙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인이 물러간 뒤에도 낙리는 그대로 서 있었다. 다시 한번 사랑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미간이 살며시 좁혀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복도 끝에서 영유가 호위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의 어깨는 평소보다 처져 보였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어린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석양빛만큼 짙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

“도련님, 승상 대인과 대화는 잘 나누셨습니까?”

낙리가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응, 뭐…….”

영유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낙리도 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낮게 울렸다.

영유는 곧장 의자로 가 털썩 앉았다. 주먹으로 턱을 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련님.”

낙리가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도련님, 오늘 진도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영유는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있었다.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낙리는 잠시 영유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 선생님께서는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예습이라도 하실까요?”

목소리는 여전히 정중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영유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낙리는 눈을 약간 크게 뜨며 물었다.

“혹시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또 작은 도련님이 뭐라고 하신 것은…….”

그제야 영유가 고개를 들었다. 낙리를 보는 눈빛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런 건 아니야.”

영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조정에서 일이 있었대. 아버님께서 많이 힘드신 것 같아.”

“조정에서요?”

“응. 자세한 건 나도 형님도 못 들었어. 다만 당분간 흠 잡힐 만한 행동은 조심하라는 말씀만 들었지.”

영유는 약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것만 듣고 나왔어.”

“그러하시군요.”

낙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 조정의 일이라면, 굳이 영유를 통하지 않아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버님께서 정말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

영유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나도 아버님께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낙리는 영유를 바라보다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에 관직에 나가시면 그때는 도련님께서도 승상대인께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낙리는 한 발 다가가 영유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학업에 힘쓰시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것이 도련님께서 지금 아버님을 위해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효도입니다.”

“응…….”



‘막료들이 불려 간 것이 유시(酉時) 무렵이었는데……. 지금도 논의 중일까.’

낙리는 속으로 계산했다.

‘승상부 막료들하고만 논의하려나? 아니면…….’



“……알았어.”

영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책상 위의 책을 보지는 않았다. 손도 뻗지 않았다. 다시 턱을 괴고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영유와 낙리는 각자의 생각 속에서 침묵에 잠겼다.


*


해가 기울기 시작한 하늘은 청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녁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자 염온은 품에 안은 화첩을 무심코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큰 대문 앞에서 문지기와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문지기의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껏 이렇게 오셨는데 참 송구하오만……오늘은 그냥 돌아가셔야 할 것 같소.”

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주인 나으리께서 오늘 퇴청하시면서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서우셨소. 안방마님과 대화를 나누신 후로는 마님까지 기분이 영 좋지 않으시고…….”

문지기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 바람에 아씨들도 눈치를 보시며 방에만 조용히 계시니, 지금 꽃그림 감상이나 할 분위기겠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염온이 물었으나 문지기는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알겠나…….”

그때, 집안에서 하인 한 명이 급히 뛰어나왔다.

“나으리께서 나가십니다! 어서 준비해요!”

“알았네!”

문지기가 다급히 대답하고는 염온에게 손짓했다.

“어서 가보시게. 나중에 아씨들께서 시간 나시면 염 화공에게 연락할 거요.”

“……네.”

염온은 걸음을 돌렸다.

얼마 걸어가지 않았을 때였다. 뒤편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염온은 스윽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마차가 대문 앞에 서 있고, 짙은 남색 장포를 입은 중년 남성이 마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옆 골목으로 비켜섰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말들은 거리를 가로질렀다. 바퀴가 돌면서 내는 규칙적인 소리와 말발굽 소리, 마차를 따르는 발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염온은 골목 귀퉁이에 서서 마차가 멀어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승상저 쪽이네.’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던 염온은 반대편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걸린 보름달은 세상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작은 돌멩이 하나에까지 또렷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낙리는 싸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당 구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릇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먹던 강아지가 고개를 들어 낙리를 슬쩍 보았다. 꼬리를 두어 번 흔드는가 싶더니 곧 다시 먹이에 관심을 쏟았다.

“누가 준 거지…….”

중얼거렸으나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낙리는 멈칫하였다. 문설주 구석,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무언가 매여 있었다. 가늘게 꼬아진 종이새끼였다.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낙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종이새끼를 풀어 손안에 감췄다.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빨랐다.

닫지 않은 문틈을 통해 달빛이 흘러들어왔다. 낙리는 그 가느다란 빛에 의지해 손 안의 새끼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작고 빽빽한 글자가 나타났다.

낙빈의 승진 소식과 오늘 조회의 분위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

낙리는 끝까지 읽고 난 뒤에도 종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려 아궁이 쪽으로 갔다.

재를 헤치자 희미하게 불씨가 보였다. 주저 없이 종이새끼를 불씨 위로 던지자 곧 불꽃이 일었다.

종이가 완전히 스러지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밖으로 나왔다.

쪽마루 위로 올라서며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식사 중인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릇은 이미 비어 있었고, 이제는 뼈 하나를 물고 열심히 뜯고 있었다. 작은 이빨이 뼈를 긁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너.”

목소리는 낮았으나 부드러웠다.

“아무거나 먹지 말라고 했잖아.”

강아지는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들어 낙리를 보았지만, 다시 한번 꼬리를 흔들고는 뼈를 물어뜯었다.

낙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마당에는 창백한 달빛만 남았다.


*


하룻밤 사이 날씨가 한층 추워졌다.

영유의 방문 앞에 서 있던 호위가 막 걸어오는 낙리를 알아보는 슬쩍 다가왔다.

“낙 선생.”

“네?”

“지금 안에 추 장사와 관(關) 선생이 계신데…….”

호위가 목소리를 낮췄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주의하세요.”

낙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따뜻했지만, 분위기는 한겨울 서리처럼 차가웠다.

영유는 탁자 앞두고 의자에 앉아, 시무룩한 얼굴로 턱을 괸 채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영유의 곁에는 추홍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관 선생이었다.



잠시 후 낙리는 영유의 맞은편에 서서 탁자 위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움직이며, 묵묵히 책 정리에만 전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귀는 방 안의 모든 말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조정 분위기가 약간 바뀌었다고 곧바로 다른 쪽에 시선을 주는 것인가?”

추홍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청년은 난처한 표정으로 영유를 힐끗 보더니, 다시 추홍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당연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승상 대인의 천거로 들어가는 것인데, 어찌…….”

“그런데 왜 이러는 것인가?”

“하지만…….”

청년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병부상서의 기세가 그렇게 무시무시하니, 하급 관리 한 명 손보는 것은……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절대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추홍이 억눌린 목소리로 묻자 관 선생은 서둘러 답했다

“그것이 아니라. 지금 분위기로는 시달리기만 하다가 금세 쫓겨날지도 모르고……그래서야 승상께 도움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다른 부(部)에서…….”

추홍의 노려보는 시선에 관 선생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추홍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자네가 천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청년이 움찔했다.

“승상 대인께서는 자네가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시어 기회를 주신 것이네. 그런데 그런 태도라면, 자네 말고도 천거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아!”

청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영유를 바라봤다. 하지만 영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책을 정리하는 낙리의 손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의 입씨름 끝에, 추홍이 청년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방 안에는 영유와 낙리만 남았다.

낙리는 영유의 굳은 표정을 가만히 살피다 말없이 다가갔다. 그는 식어버린 찻잔을 조용히 치우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련님.”

“…….”

“관 선생은 그저 잠시 두려워져서 그러시는 것뿐입니다. 아마 예정대로 도련님과 함께 병부에 들어가실 겁니다.”

영유는 대답 없이 탁자 위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읽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아무렇게나 책장을 뒤적였다.

한참 후에야 영유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사람인 건……원래 알고 있었는데…….”

책장 넘기는 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래도 내 밑으로 왔으니, 날 위해 일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병부까지 따라와서 도와드린다고 하더니만…….”

탁, 책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날 이용해 관직을 얻고 싶은 마음만 있었던 것 같구나.”

낙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영유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나 관 선생처럼 한미한 가문 출신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

“그러니 어느 정도 사심이 있는 것은……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낙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렇다고 승상 대인이나 도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을 리는 없습니다.”

영유가 고개를 들어 낙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응시하던 영유의 눈가가 이내 부드럽게 휘어지며,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너는 저 사람과 다르지. 너는 무리한 부탁을 한적 없잖아. 처음부터 내 부하였고,”

영유는 찻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그때……네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아버님께 직접 부탁했잖아. 널 내 부하로 삼게 해 달라고.”

낙리는 잠시 말을 잃고 정색하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사람을 함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는 영유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창밖으로는 살짝 진눈깨비가 휘날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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