鳥盡弓藏 : 나는 새를 다 떨어뜨리고 나면 활이 필요 없게 되어 창고에 넣는다.
(=토사구팽(兎死狗烹)
*
찬바람이 처마 끝을 스칠 때마다 정원의 나뭇가지들이 가늘게 떨었다.
영유는 팔짱을 낀 채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은 느릿하고 무거웠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버릇이 생겼다. 생각이 많을 때 그렇게 걸었다.
그 반걸음 뒤로 낙리가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승상 대인께서 요즈음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낙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정원의 찬바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게.”
영유가 중얼거렸다.
“들어오시자마자 서재로 가시더라. 며칠째.”
“그래도 도련님과는 자주 만나 주시는 것 같던데요.”
“……바쁘신 와중에도 챙겨 주시려는 것이겠지.”
영유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많이 힘드신 것 같아서……걱정이야.”
영유의 목소리에 잠시 무언가 고였다가 사라졌다.
낙리는 보폭을 유지한 채 답하지 않았다.
정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길이 끝날 무렵, 영유가 걸음을 늦추었다.
“……참.”
뭔가 생각난 얼굴이었다.
“며칠 전에 병부상서 댁에 심부름 다녀왔다 하지 않았느냐. 그건 어찌 되었느냐?”
“직접 뵙지는 못하였습니다.”
낙리의 오른손이 소매 자락을 가만히 쥐었다 놓았다.
“행랑채에서 기다리다 답장을 받아서 돌아왔지요.”
영유가 멈추며 돌아보았다. 눈썹이 슬며시 찌푸려졌다.
“아버님의 서신을 받아 심부름을 보낸 사람을, 행랑채에서 기다리게 하다니 무례하지 않으냐.”
“그러게 말입니다.”
낙리가 조용히 수긍했다.
“저야 무시당해도 무방한 사람이오나…….”
그는 잠시 말을 고르듯 뜸을 들였다.
“서신을 보내신 승상 대인의 체면도 생각지 않는 것 같아, 그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지.”
영유는 다시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너에게도 무례한 일이 아니냐. 너는 향시도 합격한 사람이고, 멀기는 하여도 그 사람과 친척 간인데.”
낙리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높으신 분들 눈에 저 같은 사람이 들어오겠습니까.”
담담한 말투였다.
영유는 잠시 입을 다물고 걸었다. 그러다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아직도 어림이 남아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낙리는 입가를 올려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의 두 눈은 허공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나뭇잎이 또 한 장, 바람도 없는데 저 혼자 떨어졌다.
*
정원 한쪽 구석, 담장에 기댄 듯 서 있는 헛간 앞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었다.
두꺼운 문 아래 틈새로 훈훈한 공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영유는 별 망설임 없이 문을 밀었다.
삐걱——.
안에 있던 하인이 화들짝 몸을 돌렸다.
새장 앞에 바짝 붙어 웅크리고 있던 자세에서, 너무 급하게 일어선 탓에 발이 잠깐 엉켰다. 뒤꿈치가 지푸라기를 밟으며 소리를 냈다.
헛간 안은 따뜻했다. 한쪽에 화로가 피워져 있어 오히려 약간 더울 정도였다. 영유가 무심코 손부채질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온기 한가운데, 커다란 새장이 있었다.
굵은 철사를 촘촘히 엮어 만든 새장 안에는, 커다란 초록 앵무새 한 마리가 횃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새는 마침, 무언가를 삼키고 있었다.
꿀떡.
하인의 눈이 아주 잠깐 새장 쪽으로 튀었다가 돌아왔다. 곧 허리를 숙였다.
“도련님. 어인 일로…….”
“그냥 지나다 들렀다. 어휴, 여기만 여름인 것 같구나.”
영유는 헛간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영유의 시선이 새장으로 향하기 전, 하인은 새장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앵무새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듯하다가 곧 깃털을 바짝 세우고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하인은 개의치 않고 서둘러 새의 부리 언저리를 닦아 주었다.
새가 날개를 펼치며 갈고리 같은 부리를 벌리자, 하인은 서둘러 손을 빼며 앵무새에게 말을 건넸다.
“자, 도련님께서 오셨다. 인사드려야지.”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해 보거라. 안—녕—하—세—요.”
앵무새는 부리만 딱딱 부딪쳤다.
“자, 따라 해. 안녕하세요.”
딱딱.
하인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따라 하거라. 안녕하세요——!”
“새가 겁먹겠다.”
영유가 픽 웃으며 끼어들었다.
“원래 멍청한 애라 말 가르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앵무새가 횃대 위에서 몸을 한번 부풀렸다가 부리를 열었다.
“안녕, 건강해.”
헛간 안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영유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은 매번 반말이야. 버릇이 없어.”
하인이 굳었다.
이내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으나, 찰나 그의 시선이 앵무새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손끝이 무릎 위 바지 자락을 가만히 쥐었다.
“조만간 제대로 가르쳐 두겠습니다.”
“괜찮다. 딱히 급한 것도 아닌데.”
영유는 새장을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끼는 듯, 아무 생각 없는 얼굴이었다.
낙리는 뒤로 물러선 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의 눈이 잠깐 새장 아래쪽을 훑었다. 지푸라기, 물그릇.
그리고 작은 먹이통.
그는 묵묵히 시선을 거두고는 영유를 향해 돌아섰다.
영유는 새장을 만지작거리며 안쪽의 앵무새에게 말을 걸었다.
“제대로 말을 배워야 한다. 알겠느냐?”
앵무새가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횃대에서 두 발을 번갈아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갑자기 날개를 크게 한 번 펄럭였다.
끄아악——.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길게 질렀다.
*
차가운 바람이 창호지를 울렸다.
창 너머로는 뜰의 나뭇가지들이 쉼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낙엽은 이미 다 진 자리였다.
영 승상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뒤쪽에는 추홍이 시립(侍立)해 있었고, 두 사람 앞에 부하 하나가 허리를 굽힌 자세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최근에 드나드는 약재상과 의원(醫員)들에게 수소문하였습니다. 단골 외에도 여럿이 드나드는 모양이었습니다.”
부하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편찮아 보이시는 것은 사실이라 합니다. 다만……. 맥은 짚지 못해서……그 사람들도 확신을 못 하였습니다. 정말로 깊이 앓고 있으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칭병(稱病)을 하시는 것인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단골 의원은 오래전부터 태사공을 모신 사람이라 저희가 무언가를 캘 수가 없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승상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사공께서는 현재 가족 이외의 방문은 일절 받지 않고 있습니다.”
부하는 보고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찾아오는 이들을 돌려보내고 편지도 반송하였는데, 요즘은 대문 앞이 그냥 한산하다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 자체가 없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승상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소 공의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형부상서와 공부상서, 공부 시랑은 자신들끼리 만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병부상서는 최근에 황궁에 자주 불려 가는 듯합니다. ”
보고가 끝난 후 서재 안은 조용해졌다.
창이 또 한 번 울렸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였다.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라.”
영 승상의 목소리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어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처럼.
탁자 위에 놓인 손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손가락들이 하나씩, 소리도 없이 접혔다. 주먹이 쥐어졌다.
추홍은 그것을 보았다.
“대인.”
추홍이 나직이 불렀으나 승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소 태사는 본래 그런 사람 아니었습니까.”
추홍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기색이 섞여 있었다. 승상을 안심시키려는 듯하기도 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도 했다.
“신중하다 못해 답답한 사람이시지요. 이럴 상황일수록 몸을 낮추고 때를 가늠하는 것, 그분 방식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자연스럽지요.”
승상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뜰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흔들렸다.
“……지나치게 움직임이 없어.”
낮고 느린 말이었다.
승상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에 있었다.
“소 공은 조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조심하는 것과 다른 것 같군.”
“예?”
“조심하는 사람은 확실히 움직임을 줄인다. 그러나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은…….”
말끝이 흐려졌다.
부하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물러났다. 서재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남은 것은 승상과 추홍, 그리고 창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추홍은 승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승상은 여전히 창 밖을 향한 채였다. 주먹 쥔 손은 탁자 위에 그대로였다.
추홍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엇이 그리 불안하십니까.”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청하는 말이었다.
승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추홍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서재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호지가 낮게 울고, 뜰 어딘가에서 마른 가지 하나가 바람에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얼마쯤 지났을까.
승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속셈이 있어서 조용한 것일 수도 있지.”
혼잣말 같은 어조였다.
“확실히 무언가를 꾸미고 있기에, 들키지 않으려 움직임을 지우는 것일 수 있다.”
잠깐 말이 끊겼다.
“……그런데.”
승상의 시선이 창 밖에서 탁자 위로 내려왔다. 쥐었던 손이 천천히 펴졌다.
“정말로 방법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건조함 아래에 무언가가 있었다.
추홍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승상의 말이 이어졌다.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해서. 그냥 누워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추홍은 잠시 생각하다가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
“이전에 말씀하신 대로, 이번 인사(人事)에 대해서도 소 태사가 몰랐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승상의 눈이 추홍을 향했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확신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낙 상서는 소 태사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승상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천천히 짚었다.
“황상께서 곁에 두고 아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말이 거기서 멈추었다.
승상의 눈이 가늘어지며 허공을 향했다.
“……설마.”
거의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이었다.
추홍은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는 물으려다 멈추었다.
승상의 얼굴에 있는 것은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영 승상이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를 결정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추 장사.”
“예.”
“소 공의 댁에 연락을 넣어라.”
“……무어라 전하오리까.”
“내가 문병을 가겠다고.”
추홍은 잠시 승상을 바라보았다. 승상은 이미 탁자 위의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었다. 더 말을 보탤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추홍은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서재의 문이 다시 열렸다가 닫혔다.
승상은 홀로 남았다. 펼쳐진 두루마리 위로 시선이 가 있었으나, 그의 눈길은 한 점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창 밖에서 바람이 다시 불었다. 뜰의 나뭇가지들이 크게 한 번 흔들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
해가 짧아진 탓에 저녁 어스름이 일찍 내려앉았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담장 밑으로 사라졌다.
“오늘도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갈 거야?”
염석이 옆을 걸으며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그러겠습니다.”
낙리가 답했다.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이봐요, 거기!”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하인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손을 저으며, 급한 얼굴이었다.
“두 분, 잠깐요.”
하인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지금 승상 대인께서 외출하실 참이십니다. 두 분은 후문으로 나가 주십시오.”
“후문으로요.”
염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쪽으로 가면 길이 돌아가는데.”
하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별다른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염석은 더 따지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낙리는 대문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대문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가자.”
염석이 먼저 몸을 돌렸다.
낙리는 시선을 거두고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