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는 안다, 가을이라는 것을
처서가 지났다.
볕은 여전히 따가우나,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그 열기를 살짝 비껴 지나간다.
그늘은 더 길어졌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나는 이제야 문득 안다.
여름이 정말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잎은 아직 짙은 초록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물들 준비를 마쳤고,
햇살은 웃고 있지만
그 눈빛 속엔 어딘가 슬며시 저무는 기색이 있다.
내 나이도 그러하다.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마흔 중반은 분명,
계절로 치면 여름 끝자락.
한때의 기세는 누그러지고,
회복은 더디며,
심지어 웃음도 어딘가 사려 깊어졌다.
아침엔 어깨가 무겁고,
저녁이면 피로가 먼저 말을 건넨다.
몸이 먼저 계절을 기억하고,
마음은 그에 따라 가을을 예감한다.
처서는 계절의 고갯마루다.
더는 여름이라 말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가을이라 선언하기엔 어딘가 머뭇거려지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지금은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삶도 그러하다.
나도, 이제는 안다.
붙잡는다고 더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 것들이 있고,
굳이 움켜쥘 필요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익어가는 것에는
떠남이 필연이라는 것을.
처서는 다정하게 속삭인다.
“조금은 덜 뜨거워도 괜찮다.”
“익는다는 건, 타오른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내 삶의 속도가 느려져도,
그건 결코 후퇴가 아니라
깊어짐이라는 사실을.
그 말을 가만히 곱씹으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를 들여다본다.
아직 남은 열기,
아직 식지 않은 갈망,
그러나 그 아래서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는 무엇이 있음을.
나는 안다.
나도, 그대도,
그리고 이 계절을 지나고 있는 모두가
더는 여름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제는 어쩐지 민망하다는 것도.
그러니 나는 담담히,
조금씩 덜어내고,
조금 더 바라보며,
이 계절의 안으로 천천히 들어선다.
처서는 다만 절기가 아니다.
그건 떠남을 연습하는 시간이며,
익어감을 준비하는 고요한 숨이며,
삶이 스스로를 안아주는 계절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문턱에 선 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조용히
내 안의 가을을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