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껏 이 십 년 가까이를 무역과 영업의 자리에서 살아왔다.
그동안 수없이 이메일을 쓰고 받으며, 비즈니스의 말이란 무엇보다 정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그러나 최근 뜻밖의 경험을 하였다.
내가 쓴 문장에서 dispatch라는 단어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 말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의 직장 상사였다는 사실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선배들에게서 늘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정반대로 “단어가 어렵다”는 핀잔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순간, 이 지적의 저의가 무엇일까 곱씹어 보았다.
혹시 영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서 나온 말일까.
아니면 사소한 부분이라도 짚어야 직성이 풀리고, 권위를 세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나는 그 고리를 끊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그의 생각이 만든 그림자일 뿐이다.
돌아보면, 나는 늘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왔다.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 표현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상황에 알맞은 것을 고르려 애써왔다.
영어라는 언어가 본디 정확한 전달을 위해 다수의 표현을 마련해 둔 까닭이다.
그것이 나의 작은 원칙이었고,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어느 날은 단어가 너무 가볍다 꾸지람을 듣고, 또 어느 날은 단어가 어렵다 핀잔을 듣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일정과 약속인데, 말꼬리만 붙들고 늘어지는 태도 앞에서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이들은 일상에서도 적잖이 만난다.
밥상머리에 앉아 반찬이 짜다, 국이 싱겁다, 굳이 한마디 타박을 보태고야 마는 사람들.
그들의 말끝은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이 모여 분위기를 무겁게 한다.
본질은 함께 먹는 밥 한 끼의 따뜻함인데, 그들은 굳이 그 온기를 흠집 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러한 태도에 오래 마음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것은 그들의 습관일 뿐, 나의 언어와 시간을 내어줄 이유는 없다.
내 마음이 더 소중하다.
나는 다만 이 일을 새로운 글감 하나로 받아들인다.
어이없음이 영감으로 바뀌고, 불필요한 언쟁이 조용한 기록이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웃으며 제목을 붙인다.
〈굳이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덧붙인다.
“아~~~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