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곱배기

검은 그릇 위에 겹겹이 쌓인 마음

by Mr Godot

어릴 적 나는 짜장면보다

비싼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세상에 그보다 맛있는 것이 있을까,
그보다 더 마음이 기뻐지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한 그릇에 면이 가득하고,
그 위로 진한 소스가 흘러내리면
그날 하루는 충분히 따뜻했다.

짜장면은 아무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대개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따라

읍내 시장에 나간 날,
특히 부모님의 한 해 농사가 잘되어
값을 제값 받고 돌아오신 날에야
비로소 그 검은 그릇이 허락되었다.
그날 부모님의 표정에는 어딘가 여유가 있었고,
나는 그 여유를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속에서

함께 삼켰다.

짜장면을 시킬 때 “곱배기로 주세요”라는

말이 붙으면 왠지 모를 풍성함이 느껴졌다.
그 말에는 넉넉함이 있었고,
평소보다 더 밝은 분위기와
한 그릇의 기쁨을 오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
면발이 많아 기뻤고,
그만큼 오래 씹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곱배기를 좋아했다.
보통으로는 모자랐다.
맛이 모자란 게 아니라,
그날의 마음이 너무 비어 있어서
조금은 더 채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마,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해

곱배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삶의 생채기로 가득한 날이면,
그 상처를 보통 그릇으로는 다 덮을 수 없었다.
조금 더 많아야 했고,
조금 더 진해야 했고,
무엇보다 ‘모자라지 않아야’ 위로가 되었다.
짜장면 곱배기는 그 점에서 내게 딱 맞았다.

중국집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유리문은 조금 기울어 있었고,
테이블 위엔 소스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지만
나는 그곳이 좋았다.
그 안에는 오래된 연기와 기름 냄새,
그리고 말없이 손을 놀리는

주방장 아저씨의 등이 있었다.

음식이 나오면 나는 정해진 순서를 따랐다.
고춧가루를 살짝 넣고,
그 위에 식초를 한두 바퀴 둘러 흐르게 한다.
러면 하루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돈하는 작은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곱게 비빈 면발을 입에 넣고
한참을 씹고 나면
말이 줄어들고 생각도 잠잠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릇 바닥에 남은 짜장 소스를 숟가락으로 퍼올린다.
그 위에 노란 단무지 한 조각을 얻어 올려
작게 한 입에 넣는다.
그건 어쩌면 진짜 마지막 한 입,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조용한 의식이었다.

사회 초년생시절
마음이 유난히 무겁던 날
나는 어김없이 그 중국집으로 향했다.
퇴근길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별다른 말 없이 짜장면 곱배기를 시켰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 검은 그릇을 앞에 두고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천천히 입을 움직이다 보면
그날 하루의 상처가 묵묵히 가라앉곤 했다.

누군가는 짜장면을 그냥 흔한 음식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짜장면 곱배기는
마음의 허기를 조용히 덮어주는 한 그릇이었다.
어릴 적엔 그것이 전부였고,
지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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