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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Nov 27. 2022

9. 우울증에 대하여...

나와 함께 가야 하는 마음의 친구인가?

오랜만에 바깥 풍경이 보인다.

아이를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책을 들었다. 친정엄마와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 지난 추석 연휴 일주일 전 다퉜었고 늘 그렇듯 다른 이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렇게 세 달이 되었다. 이 세상에 태났다는 이유로 주어지는 시간이니 그저 당장의 상황들만 급히 해결할 뿐이었다. 물론 시한부 삶을 사는 이들에겐 한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족 간의 깊은 갈등을 덮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 각자의 몫을 살아내야 하는 건 우리 가족에게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아이가 4세가 될 무렵, 나는 처음 우울증을 앓았다.

‘마음의 감기’란 이름으로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내면이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우울증이 찾아왔다. 스트레스성 우울증. 알 수 없이 꺼져가는 기분에 처음엔 ‘번 아웃’인가 했었다. 결국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고 20일가량 약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러는지 다시 생각했다. 

     

작년 1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들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와 싸우며 나는 책을 썼었다. 출간 후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 풀리나 했지만 내 책은 가족들이 평생 덮고 싶은 과거였기에 떳떳하지 못했다. 오히려 들킬까 평생 꽁꽁 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선 출간과 함께 강연도 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내 감정을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가들의 단톡방을 통해 다른 작가들이 출간 후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결국 상실감에 빠졌다.

유일하게 책 출간을 알고 있는 막냇동생은 책이 홍보될수록 들킬까 조바심 냈고 지인들에게 창피하니 절대 소개하지 말라는 남편으로 인해 스스로 잘 버티고 살았던 지난날을 한 번에 부정당하는 꼴이 돼버렸다. 


그렇게 매일 꺼져가는 무력감을 느꼈고 유아기 시절 결핍된 인정 욕구가 다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부모에겐 인정받지 못했어도 사회에서는 나름 인정받고 촉망한 기대를 받으며 결핍이 해소되려나 했지만 깊숙이 자리 잡은 어린 시절의 욕구까지 채워주기는 부족했었나 보다. 특히 가족 간의 상처는 잊을만하면 다시 꼬여 서로에 대해 원망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은 친정엄마와 부딪힐 때마다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세 한탄을 하며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하니 그런 것들이 답답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미에게 태어났음을 아직도 부정당해야 하는 중년의 자식. 사회생활로 인정 욕구를 대체하며 책임감과 성실함, 완벽함으로 무장해 건전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걸핏하면 터지는 친정엄마의 거친 욕설과 피해망상은 항상 나를 무너지게 했다. 그렇게 인정 욕구의 결핍은 책의 무게만큼 버거웠던 것. 책이 출간되었지만 정작 소중한 내 가족에게는 알릴 수 없는 현실이 다시 나를 작게 만든 거였다. 아무렇지 않게 내 안의 의지로 버티려 했지만 그게 보통의 가족사가 아니었다는 걸 사회적으로 공고히 하며 또 다른 무게감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었다.     


우울감을 겪고 있는 며칠 동안 이유 없이 허우적거리며 알 수 없는 꺼짐에 그저 답답했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이유가 드러나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약 복용을 끝낸 지 일주일 후 다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이전에 우울증 약은 기분이 괜찮아져도 한 달 정도 복용하기를 권했기에 혹시나 해서였다. 그리고 원인을 알았으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홀가분해졌고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받고도 싶었다. 다행히 선생님과 내 생각은 일치했다. 그리고 한번 더 내게 덧붙였다.    

  

“혼자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도 없어요. 상황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혹시 제가 많이 예민해서 그런가요?”     


“음... 예민하다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선 힘들 수 있으니 본인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세요!”     


푹 쉬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난 쉬어도 괜찮았다. 또 몇 년 동안 잊고 살았나 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쉬어도 괜찮은 거였다. 선생님은 보름치의 약을 단계를 낮춰 다시 처방해 주었다. 병원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앞으로의 시간은 내 몫이란 걸. 그러고 보니 ‘나를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그리웠나 보다. 지금부터는 당당히 며칠 쉬고 긍정적인 나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 

물론 두 번째 겪는 우울증이라 그런지, 아님 중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기분이 더디 올라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희망이 보이니까.     


최선겸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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