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죽음에 관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 중에서
P192
현대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죽음도 화려하고 복잡하게 포장한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도 우리와 평생을 함께한 물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사진은 어떨까? 바람에 이리저리로 날리다가 어느 낯선 사람의 발아래에 떨어져서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누구지? 이 사람?”
나는 죽음에 대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절망감을 느꼈고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매일 밤 이불속에서 울며 잠을 청할 때마다 자살 후 부모님의 얼굴이 연달아 떠올랐고 몹시 슬퍼할 모습에 다시 생각을 지우곤 했다. 그리고 ‘그래, 엄마 아빠도 내가 죽으면 눈물을 흘리 거야! 나를 사랑할 거니까’라며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다시 속죄하며 울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렇게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가족의 해체는 삶에 대한 잔인함을 빨리 경험하게 했고 이른 성숙함을 지니고 자라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란 집단 속에 발을 내딛을 때도 IMF라는 경제 한파 속에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며 끼니를 굶기도 했었다. 20대 초반 안전한 둥지를 잃은 나는 또 한 번 삶의 이유와 자살을 고민했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가족들의 얼굴은 또다시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죽고 싶지 않았던 거였을까? 용기가 부족했던 걸까?’ 문득 떠오르는 의문에 나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임을 깨닫고 그 무능함에 다시 또 처절히 울기도 했었다.
다행히 몇 년이 흘러 사회적 안정기를 찾은 나는 성인기까지 무난히 보내고 부모란 자리를 찾아 어른으로서 내 아이를 만났다. 하지만 현실은 냉랭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죽음’에 관해 깊이 고뇌했다. 홀로 살았던 아버지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남은 후회와 함께 참 많이도 울었는데 이 글귀를 읽으니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든다.
사실 내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죽음을 홀가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편히 쉬는 걸로, 이제야 편히 눈감을 수 있는 걸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홀로 남을 아이가 있으니 걱정이 태산인 건 뭘까? 사실은 죽기 싫었던 걸까? 아님 인간의 욕심일까?
사람이 죽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죽을 일이 내일 당장 생기지 않을 거란 생각도 큰 착각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
내 아이에게 마음의 짐은 남기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책장 깊숙이 간직한 내 불행한 과거 일기장부터 정리하며 나의 슬픔은 되물리지 말아야겠다. 오히려 남은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편지를 남겨야겠다. 그리고 쓸데없는 물품은 쟁여두지 말고 내 체취가 남은 입지 않은 옷들도 모두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