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의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할 겸 도서관까지 걷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일은 없을 터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사회복지학과 과제물이 있어서 도서관에 가야 할 것 같다. 오늘은 타이핑을 해야 하니 열람실에 들어가지 않고 휴게실 테이블 한편을 차지해 노트북을 켰다. 과제를 읽으며 교재를 펼쳐 미리 요약해 둔 글귀를 찾아 다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과제물들은 하나같이 사회복지분야의 역사와 각 이론을 바탕으로 요즘 사례를 추가해 분석하는 내용들이니 갈피 잡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일하면서 알아야 할 내용을 벌써 하라는 건가?’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알고는 있다.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나는 어느새 성장해 있다는 것을. 작년 한 학기를 보내며 며칠 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낯선 용어들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데 실제 사례도 검색해 필요한 자료를 도출해야 한다. ‘와, 너무 어렵다!’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지 용어가 아직 낯선 건지 눈으로 읽으면서도 무엇을 이해했는지 몰라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단어들을 조합해 타이핑을 시작했다.
점심 무렵이 되었다. 공부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휴게실로 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들어갔다. ‘다들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퇴직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 취업 준비로 온 젊은 남녀들. 창밖을 보니 전원주택의 깨끗한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주인아주머니는 아직도 잘 계실까?’ 문득 나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30대 초반, 여기 도서관이 처음 생겼을 때 나는 유치원 임용고시를 공부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같은 공부를 했지만 무척 행복했었다. 나는 IMF시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미술대학의 꿈은 접고 백화점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해 유아교육을 전공할 때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졸업 후 유치원에서 일을 하며 사립유치원의 현실에 실망해 다시 공립유치원에 들어가려고도 했다. 그동안 실력도 운이라고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게 이뤄진다고 믿었지만 운도 있어야 함을 그때 깨닫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를 하는 듯했으나 이제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가겠다고 대학에 편입했다. 임용고시의 실패로 자존감이 떨어져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겠다고, 이제는 도서관에서 다시 공부할 일은 없을 거라며 떠났는데 이렇게 돌아왔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나의 욕구도 숨길 수 없나 보다.
끝내지 못한 과제물과 노트북을 덮고 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하원 시간, 강아지 산책도 해야 해 함께 집을 나섰다. 걸음을 재촉하며 교문 앞에서 아이를 찾았다. 저 멀리 뒤뚱거리며 걸어 나오는 아이. 무의식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핸드폰 동영상을 켜 아이의 모습을 멀리서 찍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아이는 강아지와 함께 서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까꿍! 누구야?”
엄마의 반기는 소리에 아이는 부끄러워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팔에 매달려 간식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제부터 나는 엄마와 아내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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