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겸 Mar 22. 2024

100-19 열정이란?

남편 출근을 시키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날짜를 정해 놓고 듣지 않으면 어느새 강의가 밀렸다. 작년엔 일하면서 어찌 들었을꼬. 시간은 많으면 많은 대로 허비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알뜰하게 사용된다. 머릿속을 굴려가며 집중의 흐름에 빠져있을 때 전화가 왔다.

“응! 은영아. 오랜만이네!”

“그래! 요즘은 뭐 하고 살아?”

얼마 전 각자의 일행들과 식당에서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눴던 은영의 전화였다. 신기하게 은영이는 잊을 만하면 식당에서 만났다. 그렇다고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나지는 않았다. 꼭 1~2년에 한 번씩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은영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다. 키도 크고 이목구비도 뚜렷해 청소년 잡지 모델도 잠깐 했었다. 결혼을 25세에 하면서 그때부터 아이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첫 아이는 이번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함께 백화점 일을 하며 친구는 결혼을 했고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겠다며 대학에 들어갔었다. 요즘을 생각하면 은영이는 엄청 일찍 결혼한 거지만 그땐 20대 중반의 신부는 보통이었다. 그렇게 친구는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첫 남자의 끈질긴 구애 끝에 갑자기 결혼했다.

     

“요즘? 글쎄. 평생 일하고 살아야 하니 이것저것 해보는 거지.”

“그래도 대단하다.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는 게 어디야!”

‘열정’이란 단어. 참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40대 초반까지도 들었던 것 같다. ‘까도 까도 양파 같은 여자! 선생님의 열정을 응원합니다!’라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체력이 안 따라주니 자신감도 어느새 바닥났다. ‘아니야! 예전처럼 쌩쌩하게 일할 수 있어!’라고 부정하면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혈관도 약해지니 터지는 겁니다.’ 등 직업병도 나이를 먹으니 악화돼 새로운 일에 설레고 들뜨던 기분도 많이 가라앉았다.

예전에 어른들이 한 말이 있다. ‘나이는 숫자일 뿐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지만 몸은 늙어갔다. 체력적인 한계로 마음가짐이 이렇게 바뀔지는 상상도 못 했다.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며 다시 건강한 체력으로 되돌아가길 바랐지만 젊음은 다시 찾을 수는 없는 거였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듯하다. 술도 예전처럼 마시지 못한다.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았고 끝까지 남는 여자였는데 이제는 피하고 싶은 자리가 되었다. 매월 맞이하는 생리도 일정하지 않다. 40대 들면서 폐경 검사도 2번이나 했다. 이제 20대의 젊은 여자는 추억 속에 자리 잡아야 했다.

그래도 예쁜 여자로 늙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 욕구다. 가끔 아이가 “엄마는 왜 이렇게 늙었어?”라고 하면 정신이 번쩍인다. 그래서 아직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 머리칼이 젊음의 상징인 건지 아이는 내 머리칼 길이에 집착했다. 다른 건 하나도 관심이 없으면서. 오늘따라 열정이란 단어가 참 그립다.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열정#친구#결혼#중년

작가의 이전글 100-18 도서관-나를 찾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