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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Mar 23. 2024

100-20 생각하는가? 생각당하는가?

토요일 아침. 방송대 출석 수업이 있는 날이다. 학교를 가야 하니 보통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와 남편의 아침을 차려놓고 아이의 센터 수업 준비물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점심 도시락도 준비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학교 수업은 7시간을 하니 온종일 아이는 혼자 있어야 한다. 가끔 아이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을 찾아야 했다. 후에 아이가 ‘우리 엄마는 열심히 살았어’라고 이해해 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교실에 도착하니 3월 초에 출석 수업으로 만났던 분들이 보였다. 출석 순으로 조별 과제를 했다고 제법 얼굴이 낯이 익었다. 더구나 3학년 2학기 편입생들이니 몇 명 되지 않아 같은 처지에 공감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다들 다음 학기 실습처로 고민이 많은 듯했다. 일을 하며 공부를 하는 분들도 있으니 실습 시간 비우기가 고민이고 뒤늦은 공부에 불안해 스터디를 하는 분도 실습이 만만치 않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벌써 걱정을 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유가 있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고 장애인 화장실 뒤처리도 걱정되지 않았다. 유아교사로 일하며 그런 건 일상이었기에 비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걱정이 많으신 분은 내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고 자주 만나자고 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의 교육적 목적은 개인의 책임을 묻는 잔여적 관점보다는 인간의 기본 권리로 국가의 책무를 묻는 제도주의 관점을 더 중시한다고 했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노동자뿐 아니라 보통 시민인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매번 강의마다 정치며 제도를 논하니 사실 부담스러웠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만 주면 되는데, 가난하게 사는 것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냐?, 모두 자업자득인거지’ 등 공부할수록 내가 잔여적 관점이 짙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불편하기도 했다.

수업 마무리 시간, 과제가 나왔다. ‘나는 생각하는가? 생각을 당하는가?’라는 주제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거였다. 이 문구를 책에서 먼저 봤었다. 그래서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만의 사고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어떤 일을 도전할 때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결국 그 제약을 수용하며 내 행동과 사고를 조율한다. 그러한 제약들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말이다. 얼마 전 교육청 연수를 하며 ‘교육과정 모니터링 지원단 모집’에 내가 지원하지 않은 이유도 어차피 건의해 봐야 달라지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 않은 것도 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오래된 우리의 유교문화와 주입식 교육에 따른 수용적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 어렵다. 내 가치관과 사고를 모두 바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자리를 잡아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니 평소와 다르게 따뜻했다. 화단에는 노란 나비들도 바쁘게 날아다닌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운 듯했다. 나른한 오후, 자연스레 긴장감도 풀린다. 그렇게 조금 전에 배운 철학과 세력, 제도, 권력 등 머리 아픈 단어들도 날려버렸다. 따뜻한 햇살 아래 낮잠 한번 잘 수 있다면 정말 꿀이겠다. 하지만 엄마로 돌아가는 시간. 오늘 저녁에 아이 친구들을 초대해 파자마 파티를 열기로 한 약속이 떠오르니 다시 마음이 바빠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미리 장을 봐둔 음식 재료들을 떠올리며 어떤 메뉴부터 할지 고민했다. 이제 엄마의 업무가 시작되니까.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생각#이념#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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