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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Feb 03. 2023

차경의 백미 연곡리 거실

차경의 백미 연곡리 거실

연곡리 집 거실은 2층에 위치해 있고 정남향이다. 넓이는 다섯 평이 좀 안됐다. 전세를 구하려 연곡리 집을 처음 방문하여 2층 거실에 올라갔을 때의 정경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월의 봄 햇살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따뜻하면서도 여유로웠다. 거실 밖에는 신록이 한참 피어나고 있었다. 공간적으로는 거실이 밖으로 확장되어 대자연이 거실 안으로 오롯이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10평 거실이 아니라 10만 평쯤 되는 거실이었다. 일년 내내 수도권의 전원주택들을 방문해 보았으나 이 정도로 차경이 경이로운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차경의 백미였다. 


이사 후에 텅 빈 거실에 삶을 담기 위하여 몇 가지를 투자하기로 했다. 우선 이케아(Ikea)에서 안락의자 두 개를 샀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 알바 알토가 1931년 설계한 파이미오 의자를 바탕으로 이케아가 대중성을 고려하여 다시 설계하여 판매하고 있다. 한대지방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한 자작나무 합판을 구부려 프레임을 만들고, 철제 틀에 천을 씌워 심플하게 만들었다. 가성비가 뛰어나고 실용적이면서 안락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한 의자가 아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하여 편안하도록 만들어졌다. 의자에 앉으면 몸이 약간 뒤로 젖혀지면서 느긋한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이케아 의자는 가벼워서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음악을 들을 때는 스피커 앞에, 밖을 바라볼 때는 창가로 옮겨서 사용했다.


건축가 유현준은 ‘창문은 건축물의 기능과 사회적, 심리적인 요구에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조절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라 했다. 도시의 창문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집안의 열을 보존하는 역할에 그친다. 연곡리 집 거실의 창은 삶의 공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이 창이 존재함으로 해서 거실은 자연과 소통의 장이 된다. 우리 부부는 햇빛이 잘 드는 시간에는 안락의자에 기대어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내다보곤 했다. 소위 ‘멍 때리기’라 할 수 있다. 연곡리의 사계를 오롯이 이 창을 통하여 바라보고 기억하였다. 4월에는 봄 햇살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따뜻하면서도 여유롭고 싱그럽다. 녹음이 우거진 창 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여름에는 장맛비가 나뭇잎에 부딪치는 소리와 뇌파가 동조되어 잡념이 사라진다. 단풍이 물든 연곡리는 내가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유를 백가지도 더 설명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백설이 뒤 덮인 풍경은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은 생체 리듬을 균형 잡힌 형태로 되돌려준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지 수가 적어야 한다. 거실에 의자 외에 오디오만 추가로 설치했다. CD 플레이어와 진공관 앰프 그리고 스피커로 단순하게 구성했다. 음악은 배경처럼 항상 틀어 두었다. 밥 먹을 때는 독주 위주의 고요한 곡을, 밖에서 일할 때는 비트가 강한 음악을 틀었다. 거실은 커다란 울림통이 되었다. 오디오에서 나온 소리에 공명하면서 그 소리를 식당과 마당으로 증폭하여 보내 주었다.

거실에 있는 책장에는 최소한의 책만 두었다. 읽고 싶은 책들을 서울에서 가져와 꽂아 두었다. 장마가 지는 여름이나 일거리가 없는 겨울이 독서의 계절이었다. 천고마비의 가을은 독서가 가장 어려운 계절이다. 눈은 글씨보다는 단풍나무에 노을이 비춘 풍경을 쫓는다. 또한 텃밭과 마당에 할 일이 태산이다. 

건축가들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주어진 땅과, 건축주와 건축가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주는 주어진 땅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명확하게 건축가에게 전달해야 한다. 건축가는 주어진 땅을 이해하고 건축주의 요구를 설계에 담아내야 한다. 이때 땅의 조건과 건축주의 요구와 건축가의 건축 철학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건축가는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삶을 담는 그릇인 집을 완성해 내야 한다. 1층에 거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층에 거실을 하나 더 만들었다. 주어진 땅의 조건을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되었다. 연곡리 전체와 그 앞에 펼쳐진 산야를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서는 2층에 거실을 배치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1층 거실의 용도가 애매했다. 실제로 살아보니 활용도가 떨어졌다. 건축주의 요구를 건축가가 그대로 수용했는지, 아니면 두 사람이 동일인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이 집을 구매하려고 검토했을 때 1층 거실의 쓰임새가 낮은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곤지암 2층 거실은 실질적인 공간이라는 객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라는 정보로 남았다. 우리가 이년이라는 세월을 여기서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다양한 간직할만한 추억을 만들어 냈고, 그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 연곡리 거실은 물리적 객체를 넘어 우리의 삶과 함께 살아 숨 쉬던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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