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텃밭, 관계를 가꾸는 장소

이웃의 배려

by 자경심전

눈이 만들어준 관계의 기회

2013년 곤지암 연곡리에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 부부는 집 앞 길 뿐만 아니라 마을 아래 단지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마을 앞 길까지 치웠다. 심지어 70대 노부부가 사시는 옆집 길까지 다 눈을 치웠다. 이왕 눈 치우는 김에 조금 더 하자는 마음이 동네 분들의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 분들은 퇴직 후 이곳에 집을 짓고 살고 계시는데 집 앞에 300여 평 되는 밭을 가꾸고 계셨다. 노부부가 이 밭을 전부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는지 이분들은 마을 전원주택 단지 주민들 중 몇 분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제공하여 공동으로 사용하고 계셨다. 우리 부부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계시던 밭주인은 돌아오는 봄에 우리 부부에게 땅을 일부 내어 줄 터이니 같이 농사를 지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곤지암 집 마당에는 상추나 들깨 정도를 가꿀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은 있지만 감자, 고추 등 많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좀 더 넓은 텃밭을 찾고 있었던 우리 부부에게 이 제안을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를 계기로 이 동네의 진정한 일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IMG_7077.JPG 연곡리 김교수께서 분양해 주신 공동 텃밭


봄이 되어 농사를 시작할 즈음 김교수 부부는 텃밭 경작에 동참할 의사를 표현한 네 집 구성원들을 마을 근처 식당으로 초대했다. 일종의 총회 소집이었다. 김교수가 미리 마음속으로 정리한 내용을 구성원들에게 설명했다. ‘땅은 무상으로 임대한다. 한 집당 10평 정도 분할한다. 비료는 김교수가 농협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한 후 네 집이 분담한다. 땅을 가는 비용도 분담한다.’는 내용이었다. 주인이 비용을 분담한다고 하는데 이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땅에 감자와 토마토, 오이, 고추, 가지, 상추, 배추, 무 등을 심었다. 물은 김교수가 집을 지을 당시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지하수에 수도를 연결하여 밭에 설치해 두어 수월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IMG_5969.JPG 연곡리 텃밭에서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다


텃밭의 3적

텃밭을 경작하면서 텃밭 3적이 있음을 알았다. 제1적은 잡초였다. 봄에는 호미로 대항할 수 있었으나 한 여름에 장마와 무더위가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해야 하고, 고랑에는 부직포를 깔아야 함을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잡초에 버금가는 강적은 해충이었다. 유기농을 표방했으므로 농약을 뿌릴 수는 없었다. 일일이 눈으로 찾아내고 손으로 잡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무당벌레나 배추벌레는 그나마 손으로 처치할 수 있었지만 진드기가 끼면 해당 작물은 포기해야 했다. 서울 태생인 아내는 유독 벌레를 무서워했다. 벌레 처치는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지렁이는 곤충보다도 더 아내가 기피했다. 풀을 뽑다가 지렁이가 나오면 호미를 집어던지고 줄행랑을 쳤다. 김장 배추는 해충을 방제하지 못해 수확이 미미했다. 감자가 그나마 곤충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었는지 수확이 좀 있었다.


고라니의 피해도 상당했다. 상추 잎 같은 연한 작물을 아주 좋아했다. 저녁에 도착해서 차의 불빛을 비추면 고라니가 몸을 숨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고라니 피해를 막기 위하여 노끈을 사용하여 사방을 둘렀다. 밭 주위의 잣나무들을 연결하여 아래, 중간, 위 삼중으로 말이다. 그러나 고라니는 우리의 이러한 조치를 비웃는 듯했다. 정기적인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밭에서 상추를 빼고 집 마당으로 옮겼다.


텃밭의 가치

아내는 애들 키울 때보다도 텃밭 가꾸기에 더 정성을 기울이는 듯했다. ‘텃밭 가꾸기’ 책을 사서 정독을 하고,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작물 키우는 방법을 공부했다. 비닐 씌우기, 발효액으로 거름 만들기, 칼슘 비료 만들기, 가지치기, 웃거름 주기 등등 온갖 농사 방법을 다 배워서 적용했다. 모종을 옮겨 심은 다음에는 수시로 물을 주고 상태를 점검했다. 금요일 저녁에 차를 몰고 도착해서는 텃밭에 문안 인사부터 하자고 했다. 차의 헤드라이트를 밭에 비추어 놓고 일주일 간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했다. 귀찮은 일들을 곧잘 남편에게 시키는 아내지만 텃밭 가꾸기는 혼자 알아서 척척 해냈다. 곤지암에서는 아침 6시에 일어나 텃밭의 야채들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했다.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 의식이 아내에게 활기를 부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기른 야채를 먹어서 얻는 효과보다도, 기쁨과 몰입으로 하는 텃밭 가꾸기 그 자체가 생명에 더 활력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텃밭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마다 다 달랐다. 김교수네 사모님은 허리가 안 좋아 밭 일을 전혀 하지 못하셨고, 함선생 안주인은 농사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총무 남편도 텃밭에 소극적이었다. 우리 부부만 열심이었다. 농사의 계절이 오면 대부분의 텃밭 구성원들이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자연스럽게 모였다. 더운 한낮에는 일을 하지 못한다. 모이면 안부를 묻고, 농사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수다를 떨었다.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서 했다. 김교수가 노구를 이끌고 풀을 메면 같이 메 주었고, 지주를 세우면 같이 동참하였다. 서로 모르는 농사법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다른 집이 심지 않았거나 잉여 농산물은 서로 나누어 먹었다. 외지인에서 같은 동네 주민으로 신분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텃밭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텃밭은 작물을 가꾸는 곳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는 교류의 마당이며 아픈 몸을 회복해 가는 치유의 장소이기도 했다. 첫해 소출은 변변치 못했으나 네 집과 교류하면서 친해진 큰 수확이 있었다. 아내의 건강도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곤지암에서 용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