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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촌부 Jun 16. 2023

이래서 나는 왕십리가 좋다.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


친구들 모임으로 유년시절에 살았던 왕십리에 갑니다.

항상 열차와 지하철을 이용하고 늘 같은 장소에서 만나다 보니..

재개발로 변화된 전체 모습을 자세하게 눈여겨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라져 버린 골목길로 인하여 제 추억을 더듬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늘 중앙시장에서 만나던 장소가 변경이 되어 전풍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왕십리 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너무 가깝게 서 있어서 그런가

높이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아파트들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떡 허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어~~ 여기가 어디지....??

30 년을 살았던 곳인데 마치 처음 온 곳처럼 혼란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길 건너편 건물들이  예 전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수십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다녔을 이 길에서 잠시 미아가 되었습니다.


유년시절에 내가 놀던, 살던 왕십리는

매몰차게.. 단 하나의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리고

거대하고 웅장한  아파트 타운으로 변신을 했더군요.


늘~ 평면 공간에서 익숙하게 자란 저에게는

공간 효율을 높인 수직으로 상승하는 공간은 아직도 불편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왕십리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예 전 보다 깔끔해졌지만,

어수선하고 한참 걸어야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이 좋습니다.






그곳에는 너무도 익숙한 어수선함과 약간의 무질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정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왕십리는 역시 왕십리입니다!

제 모습을 감추기 힘들어서.. 더더욱 정겨운 곳

제가 자란 왕십리입니다.


지나가다 후배 두 분이 저와 제 친구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합석합니다.

허락도 필요 없습니다.

앉으면 모두가 왕십리 유년시절을 공유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아 ~~~

아직도 나를 알아보니 이가 있더군요. 

이래서 나는 왕십리가 좋습니다.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반가움이 가득한 미소를 주는 이들이 있는 곳...


좁은 원형식탁에 빙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은 소재들...

청계천 검정다리가 장마철이면 떠내려 가던 이야기..

둑방 판잣집에 불이 나면 순식간에 모두 타버린 이야기까지.. 


내가 자란 왕십리... 

이제는 뛰어놀던 골목길도 사라지고...

새시장도 사라지고.. 광무극장 동원극장도 사라졌지만..

유년시절의 내 모습을 감출 수가 없는 왕십리.


이제는 한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변화 전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중년의 관찰자로 변한 제 모습이 너무도 서운합니다.


왕십리....

이제는 이곳도 언젠가는 완전한 타인의 도시로 완전하게 탈바꿈을 하겠지요.

더 이상의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았음 합니다만 그도 부질없는 바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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