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은행 업무를 보고 일어서는데 은행 직원분이 " 차량 뒷자리 번호가 몇 번 이세요? "
무료 주차를 해준다는 말인데 2년을 넘게 타고 다닌 차 번호가 캄캄하더군요.
결국은 주차장에 가서 차 넘버 판을 보고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은행에서 허둥대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평소 스스로 기억력이 그 닥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세월이라는 벽 앞에서는 저도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고민은 안 합니다.
기억이라는 창고에는 새로 입고되는 기억이 있으면 밀려나는 기억도 있는 법이니..
어렵거나 즐거웠던 순간은 세월이 지나면 한 편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기억은 두뇌 속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더군요.
유년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좁은 골목길..
시골 할머님 댁 이끼가 낀 돌담..
콜타르를 바른 나무 전봇대..
내가 투사한 이 모든 기억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죠.
어느 장소, 어느 물건은 내가 아득히 잊고 있던 기억마저도 굳건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그 기억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 기억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 요즘은 그 필요한 순간에 기억은 자신의 업무수행에 많이 지친 듯 보입니다.
추억의 장소나 기억이 무너져간다는 것은
내 기억이 붕괴되고 내 기억에서 지워져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내 유년 시절을 보낸 왕십리가 재 개발이라는 큰 물결에 통째로 사라짐을 바라보는 고통 앞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고향은 "언젠가는 돌아갈"이라는 명분으로 다시는 찾아가지 아니하고
그 땅과 내가 나누어 간직한 기억만을 반추하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두뇌 속 기억도 소멸되어 가는 육체와 더불어 지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나의 기억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옛사람들의 삶의 기억을 뒤적이는 나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오늘입니다.
그나저나...
내 차 번호가 몇 번 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