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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12. 2024

서울살이

'-살이'란 어떤 일에 종사하거나 어디에 기거하여 사는 생활을 뜻한다. 서울살이란 서울에 기거하여 사는 생활이고 세상살이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말한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산 햇수도 그럭저럭 결혼한 햇수처럼 나이를 먹었다. 물론 중간에 직장의 인사로 지방에 내려가서 산 적도 있지만 세상살이 종착역은 서울이 되어간다.


서울살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집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면 떠돌이 생활이 따라오고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정착생활이 가능해진다.


떠돌이와 정착생활은 장단점이 있지만 서울에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정착생활을 꿈꾸며 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도 뒤늦게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떠돌이 반 정착 반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의 단점은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 해서 부수적인 비용이 많이 나가고, 정착생활의 단점은 부수적인 비용은 나가지 않지만 좋든 싫든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며칠 전 집을 어렵게 어렵게 팔았다. 집을 내어 놓은지 근 십여 개월만이다. 집이 나가지 않아 매물을 회수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계약이 진행되면서 집이 팔렸다.


원래 집을 내놓은 목적은 지금의 집보다 적은 평수로 옮겨가고 가격도 낮추어 수도권에 가서 살면서 남은 돈이 생기면 아이들이 살아가는 기반을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을 팔고 나서 현재보다 적은 평수 대의 가격을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은 낡고 오래되고 가격이 높지 않아 평수를 줄이되 최근 입주한 집을 구하려고 하니 가격이 너무 올라 있었다.


집을 팔고 나서 여러 날을 새로 이사 갈 집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중개사무소 등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고민만 깊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입주를 앞 둔 재건축하는 집이 매물로 나와 이것저것 알아보고 입주시기에 맞추어 계약했다. 그로 인해 계약 날짜에 맞추어 살던 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 이사 가서 다시 정착해서 살아가야 한다.


서울살이에서 어느 곳이 살기에 좋다 나쁘다 하는 평가는 나중의 문제다. 서울살이에서 주거지 선택의 중요한 변수는 내가 수중에 얼마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지금 직장을 퇴직한 상태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태다. 비록 어렵게 집을 구하여 계약을 하고 보니 다시 새롭게 이사 갈 곳이 기대가 되고 이사 갈 날이 기다려진다.


나이가 들어 이사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간 서울살이 하면서 집값이 상상 이상으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고 집도 시대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며칠간 집 문제로 어수선한 가운데 엊그제는 막내딸이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다니고 싶다고 해서 원룸을 구해서 이사 갔다. 모처럼 홀로 독립하는 막내가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혼해서 나가는 딸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서울살이에서 홀로 나가서 산다고 하니 걱정도 되고 염려도 되었다. 원룸에 이사 가서 딸과 점심을 먹고 늦게까지 청소 등을 도와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살이에서 홀로 살든 결혼해서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문제다. 주거만 해결되면 서울살이는 큰 부담 없이 살아갈 수가 있다. 내가 결혼해서 서울살이를 막 시작할 때 월급은 먹고살기도 빠듯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떠돌거나 정착해서 근근이 버터며 살아온 것은 온전히 아내의 노력과 도움 때문이다. 나는 돈을 모으는 재주도 부동산을 늘리는 재주도 없을뿐더러 돈이나 부동산이 나를 따라오지도 않는 팔자다.


그런 시답잖은 사람 옆에서 근 삽 십 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아이들 양육과 교육과 출가를 시켰으니 아내의 도움을 받아 서울살이에서 나름 성공한 축에 들는지는 모르겠다.


서울을 떠나 고향에 내려가서 살고 싶어도 몸으로 부딪치고 하는 일이 오히려 낯설고 힘들어졌다. 젊은 시절엔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진이 빠지고 땀이 솟아나서 할 수가 없다.


그간 서울살이로 몸과 정신은 약해지고 자신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청소년기 때부터 해오던 일도 오랫동안 하지 않아 몸이 굳어졌고 생각도 굳어진 것 같다.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싶어도 아내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서울살이를 청산하려면 수도권에 주택을 사서 홀로 내려가 살면서 서울과 수도권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자금이 부족해서 생각만 할 뿐이다.


이번에 집을 팔고 다시 집을 구하면서 느낀 것은 서울은 주택 가격이 나날이 오르고 새로운 형태의 주택이 등장하면서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른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울살이를 하면서 지킨 원칙은 집을 판 돈은 절대 다른데 쓰지 않고 오롯이 집을 구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집을 팔고 서너 달이나 일 년 후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새로 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가는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서다.


그나마 지금까지 서울살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을 구할 때는 산 때보다 어느 정도 가격이 오른 상태라 빚을 지지 않아서 가능했다. 집을 살 때보다 팔 때 가격이 떨어지면 집을 파는 순간 서울을 떠나 수도권이나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

 

맨 몸으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비록 작은 집이나마 소유하고 아이들과 떠돌거나 정착생활을 하며 살아온 것은 행운이었고 축복의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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