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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16. 2024

봄 내음 채취

오늘은 모처럼 고향에 가서 두릅순을 채취했다. 고향의 산자락에는 자생하는 두릅이 여기저기 자라서 매년 식목일 전후로 두릅순을 채취하러 간다.


사월의 하늘이 맑고 푸른 것처럼 고향에 가는 길이면 도로변 주변에서 연초록의 녹색 향연이 펼쳐진다. 차 안에서 연초록의 경이로움을 바라볼 때면 몸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고 연초록을 바라볼수록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연초록의 산자락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에는 연초록의 싱그러움과 신선한 기운이 차오른다. 고향에 가서 채취할 두릅순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두릅순을 따러가는 이유는 고향의 정취와 따스한 정이 그리워서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고향의 산자락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읍내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평일에 고향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일요일이 아니면 만날 수 없고 텅 빈 고향에 가면 산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맞으면 기분이 상승한다.


고향집에 도착해서 장갑과 낫과 비닐봉지를 챙겨 들고 두릅순이 자라는 곳을 찾아 나선다. 내가 두릅순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두릅순을 데쳐서 몇 개 맛보기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전부다.


두릅순을 데쳐 먹으면서 봄날의 정취와 정서를 느끼고 싶어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두릅은 아버지 산소 위장터밭 옆에서 자란다.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두릅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올라가 두릅순을 채취했다.


이제는 봄날에 두릅순을 채취하러 가는 것도 연례행사가 되어간다. 마치 봄에 두릅순을 먹지 않으면 봄을 맞이하지 않는 듯이 두릅순을 먹어 봐야 계절의 참맛과 봄이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다.


고향의 산자락을 돌아다니며 두릅순 채취가 끝나면 다음은 개울가에서 자라는 쑥을 낫으로 쑹덩쑹덩 잘라 바구니에 담는다. 두릅순 채취와 쑥을 잘라 고향집으로 내려오는 길이면 마음은 봄을 채취했다는 풍성함과 봄기운으로 충만해진다.


두릅순은 봄의 계절을 맛보게 하고 고향을 찾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두릅순을 꺾어봐야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봄 내음을 체험하기 위해 고향의 산자락에 올라가서 두릅순을 채취하는 것이다.


고향에서 두릅순과 쑥을 차에 싣고 서울 집으로 올라와서 깨끗하게 다듬어 찬물에 씻고 더운물에 데친다. 그리고 두릅순을 초고추장에 찍어서 봄 내음을 맛보고 난 뒤 쑥은 방앗간에 보내 쑥떡을 만든다.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던 시절에는 두릅순과 쑥을 잘라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면 손수 다듬어서 두릅순과 쑥떡을 만들어 주셨다. 고향에서 보낸 정겨운 시간들은 추억의 밀물이 되어 멀리 떠나버렸다.


그 시절 아버지나 어머니가 손수 집에서 만들고 엮거나 매던 일은 방앗간이나 전통 도구를 만들어 파는 곳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만큼 고향에서 느끼는 봄의 정서와 정취도 많이 달라졌다.


고향의 비탈진 언덕에 서면 지나간 추억의 시간을 아쉽게 생각하며 바라만 볼 뿐이다. 봄의 정취를 몸으로 체험하며 느끼는 것도 운치가 있지만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다.


고향의 산자락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 머릿속에는 온갖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는다. 진달래가 만발한 계곡에서 꽃을 따 먹거나 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물 캐러 들녘으로 향해 가던 시간, 산자락에 올라가 나물을 뜯고 갓자란 찔레순을 꺾어 먹던 시간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추억을 생각하며 고향의 산자락을 쏘다니면 밟히는 모든 곳이 추억의 장소로 변한다. 그에 따라 고향의 공간은 내밀하게 마술을 부리는 무대로 변해버린다.


언제까지 내게 고향에 가서 두릅순을 채취하고 개울가의 쑥을 자를 수 있도록 락할지는 모르겠다. 오늘을 버티는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고향으로 두릅순을 채취하러 갈 때면 가는 봄날이 어서어서 오라고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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