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펼쳐 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무언가를 기념하는 날이 다양하다. 그중에 가정의 달 오월은 누군가를 위하는 날이 가장 많다.
달력에 누군가를 위하는 날은 왜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날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매년 갖는 의문이지만 누군가를 위하는 날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하고 사랑하라는 의미다.
오늘은 석가모니 탄생을 기념하는 초파일이자 스승의 날이다. 초파일에는 석가모니 탄생을 기념해서 산사마다 연등 행사나 탑돌이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을 모시고 행사를 연다.
초파일이나 스승의 날 모두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위하는 날이다. 세상에는 석가모니나 스승 외에도 존경하고 흠모해야 할 사람이 아주 많다. 부모님도 계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오늘처럼 특별한 날을 정해 누군가를 위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이 물음표로 시작해서 마침표로 끝나는 것이라지만 누가 언제 날을 정해서 사람을 위하도록 정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유행가 가사처럼 산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미 예전부터 그런 사람을 위하기로 했으니 더는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그 사람을 위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고 보니 나는 부모님이나 조상 외에는 다른 누군가를 위하며 살아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다른 사람이 위하니 나도 그를 따라 사람을 위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들 따라 살다 보니 이 나이 먹도록 누군가를 위하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닐까. 사람의 일이 다 그러하듯 자신의 마음에 누군가를 위하며 살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나는 누구를 위하며 산다는 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사회에서 누군가를 특별하게 위하기로 했으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내 마음을 드러내어 불교 신자가 아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 스승이 없다 등의 말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사람을 위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간다. 누군가 이상한 법을 만들어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거나 축하해 주는 문화의 뿌리를 없애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위하는 날의 의미도 퇴색되어 가고 가식적으로 변해간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하는 날은 그날만 위하고 나머지는 위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누군가를 위하는 날은 하루만 위하고 마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늘 마음에서 존경하고 위해야 한다. 그런 문화를 전통적으로 조성해야 하는데 이상한 법을 제정해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사드리면 법을 위반했다는 말이 나돌면서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나와 구별 짓는 다른 사람이 누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단군 자손에 다리 하나 건너면 사돈에 팔촌인데 왜 이상한 법을 만들어서 따뜻하게 조성해 온 전통적인 문화를 차갑게 변질시켰을까.
이제는 과거의 관습과 문화를 어느 정도 선에서 되돌려야 한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합리적인 문화로 자리 잡도록 조성해야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란다.
누군가를 위하는 날은 하루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위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나마 누군가를 위하도록 특별한 날을 정해 놓은 것은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위하는 날을 정하지 않으면 그마저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지정한 것 아닐까. 이제라도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될 수 있도록 전통을 되살려 누군가를 위하는 기념행사가 번성해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