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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의 낮잠

by 이상역

요즈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두 번은 손주를 보러 간다. 내가 손주를 보러 가는 것은 손주를 밖에 데리고 나가 한 시간 정도 놀아주고 맘마를 먹이고 낮잠을 재우기 위해서다.


딸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손을 씻고 나와 손주가 오늘 몇 시에 일어났는지 맘마는 언제 먹고 응가는 했는지 등을 물어본다.


손주가 아침에 일어난 시간과 맘마 먹을 시간을 대충 알아야 낮잠은 언제 재우고 점심은 언제쯤 먹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지난 연말까지 어딘가에 출근하는 관계로 주말에 하루만 손주를 보러 가다가 계약만료로 그만두고 나서 올해 초부터는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수요일에 손주를 보는 가는 횟수를 늘렸다.


손주는 낮에 한 번은 꼭 재워야 한다. 아기가 스스로 졸려서 자기 침대에 가서 잠을 잔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나 보모가 시간을 계산해서 재워야 한다.


아마도 아이를 양육하는 집에서 제일 큰일은 낮에 한 번씩 잠을 재우는 일이다. 내 손주도 다른 손주와 마잔가지로 낮잠을 재우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손주는 일어나서 너덧 시간이 지나면 눈을 비비거나 하품을 하면서도 낮잠을 자려하지 않는다. 딸에게 손주 낮잠을 어떻게 재우느냐고 물어보니 자기 침대에 가서 엄마와 한 시간 정도 놀다가 잔다고 한다.


나는 손주를 보러 가서 일부러 오전에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놀아주고 들어와서 점심을 먹인다. 손주 운동도 시킬 겸 걸음마를 하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고 그 상태에서 맘마를 먹고 나면 낮잠도 잘 잘 것 같아서다.


그리고 손주가 맘마를 먹고 나면 아기띠를 걸쳐 메고 손주를 가슴에 마주 앉히고 얇은 담요를 휘휘 두르고 밖으로 나간다. 물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손주의 입에는 쪽쪽이도 물리고 발에 양말도 신겨준다.


그렇게 손주를 가슴에 안고 나와 아파트 단지 내를 이리저리 돌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내가 손주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자장가가 아닌 트로트나 옛 노래나 동요나 학창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다.


내가 손주에게 다양한 노래를 불러주는 이유는 혹여라도 자라서 유명한 가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아마도 딸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아빠를 흉볼지도 모르겠다.


딸은 나름 자기 아들은 훌륭하게 키워서 의사나 판사로 키우고 싶은데 손주를 재우는 할아버지가 트로트나 불러주며 가수를 시키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손주를 가슴에 안고 노래를 불러주면 짧게는 십 분이나 길게는 삼십여분 만에 잠이 든다. 손주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귓전에 들려오면 딸네 집에 들어가서 손주를 침대에 누이면 두 시간은 잔다.


손주는 남자아이라 체중이 나가다 보니 딸은 아기띠를 두르고 낮잠을 재우지 못한다. 그리고 손주를 재우러 밖에 나와 노래를 부르면서 단지를 서성이면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에 젖는다.


서울 사당동에서 큰딸을 안고 저녁에 잠을 재우기 위해 주택가를 서성이던 기억과 막내딸을 안고 재우던 생각이 난다. 내게 손주를 안고 재우는 일은 큰딸과 작은 딸을 가슴에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 옛 생각에 젖다 보면 엷은 웃음이 피어오르고 손주를 안고 단지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힘이 들지 않는다. 손주를 가슴에 안아 재운지도 그럭저럭 일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 손주를 가슴에 안고 재울 때는 턱 밑에서 꼬므락 거리더니 어느새 손주가 성장해서 할아버지 턱을 치고 올라와 얼굴을 마주할 정도로 자랐다.


내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자던 시절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 가슴을 거쳐간 큰딸과 막내딸과 그리고 이렇게 가슴에 안아 재우는 손주를 생각하면 인생은 축복이자 내리사랑이란 생각이 든다.


매주마다 딸네 집에 가서 성장하는 손주를 바라보면 힘이 저절로 솟는다. 그런 힘이 손주를 안아 재우게 하고 밖에 나가 손주와 함께 세상의 이것저것을 구경하게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저녁을 먹고 나서 손주의 밤잠을 재워본 적은 없다. 손주는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면 아파트나 상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 구경하기에 바쁘다.


그리고는 잠을 자기 싫다고 아기띠 위로 팔을 쑥 뽑아 올리거나 두 발을 연신 흔들어 댄다. 그런 상태가 되면 손주가 잠을 자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재우기를 포기하고 그냥 딸네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에게 낮잠은 성장의 보약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손주의 낮잠을 재우고 있지만 그마저도 손주가 성장하면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손주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지금처럼 할아버지 노릇하러 아기띠를 걸치고 손주를 가슴에 안아 재우러 가는 길이 마냥 즐겁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세상을 밝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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