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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설렘을 안고

by 이상역

몇 해 전 송파구체육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수필 쓰기 강좌에 등록해서 수강한 적이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강의 중간에 폐강하여 수필 배우기를 그만두었다.


송파에서 강동으로 이사 와서 살다가 우연히 강동구민회관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수필 쓰기 강좌를 보게 되었다. 그 강좌를 등록하기 전에 강사가 누구인가 하고 살펴보니 송파에서 가르치던 그 강사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선생님에게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글쓰기보다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새로운 단원이 시작될 때마다 학생들에게 요약한 것을 발표하게 했다. 선생님은 학생이 요약해서 발표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렸다.


나는 국어 참고서의 요약서를 보고 그대로 읽지 않고 내 생각과 요약서를 의미에 맞추어 앞뒤를 정리하여 발표하면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그때는 국어 선생님의 회초리를 피하기 위해 글쓰기를 한 것이지 제대로 된 글쓰기는 배우지 못했다.


강동구민회관에서 진행하는 강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아서 강사를 만나지 못했지만 반갑다. 근 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인데 송파에서 보다가 강동에서 만나게 되니 강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강사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출석해서 강좌를 들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강의를 들어야 적당할 것 같은데 무슨 연유와 곡절이 있는 것 같다.


글쓰기를 배우러 가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이론과 강사의 인생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도 있지만 함께 글쓰기를 배우는 문우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진정한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배워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신의 혹독한 노력과 부단한 연습이 수행되어야 진전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강사를 찾아 배우러 가는 것은 글쓰기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제삼자 입장에서 자신이 쓴 글에 대한 강사의 비평과 문우들의 합평을 받아보고 싶어서다.


아울러 함께 글쓰기를 배우는 문우들과 친목도 도모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고민과 애환을 나눌 수 있어서다. 물론 글쓰기는 유명한 강사에게 오래도록 배웠다고 해서 잘 써지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필이나 시를 배우는 강좌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강좌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각 지자체나 도서관에서 시 창작반이나 수필반을 너도나도 운영하더니 예산이 없는 것인지 강좌가 많이 줄어들었다.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힘은 들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해서 실천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일은 사람으로서 제 할 일을 모두 해보고 나서 나머지는 무언가에 기대 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사람들은 청춘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청춘은 젊은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의 특권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자는 절대 누릴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찾아서 누리는 자에게 찾아오는 영광이자 의지의 상징이다.


수필반에 가서 강좌를 듣는다고 글쓰기가 이전과 달라질 것은 기대하지 않지만 강사를 다시 만나고 함께 배우는 문우들이 누구일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에 설렘이 인다. 그런 설렘을 안고 수필 강좌를 찾아가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 아닐까.


내 삶에서 청춘의 시절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학창 시절과 지금처럼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길이 청춘 시절 아닐까. 청춘은 젊은이만 누리고 즐기는 특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처럼 무언가를 찾아서 누리고 즐기면 그것이 곧 청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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