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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희망가

by 이상역

오늘 아침에 구봉산과 승상산을 등산하고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노란 개나리꽃이 만발했다. 봄에는 노랗게 무리 지어 핀 개나리꽃과 분홍의 진달래꽃이 피어나야 봄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아내와 봄꽃처럼 곱게 피어난 손주를 보러 갔다. 딸네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이 손주의 감기 상태를 진료받기 위해 소아과에 예약해서 데려가야 한다며 유모차를 현관에 설치해 놓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봄인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쌀쌀하고 흰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며 오락가락한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손주를 유모차에 태우고 갈까 아니면 내가 안고 걸어갈까를 고민하는 사이에 눈도 비도 그쳤다.


딸네집에서 소아과는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야 한다. 건너편 아파트는 손주를 데리고 종종 놀이터에 놀러 다닌 적이 있어 걸어갈만한 거리다.


소아과 대기 시간이 다되어 손주를 가슴에 안고 딸네집을 나서자 마치 봄날에 노랗게 핀 개나리꽃을 한 아름 안고 가는 기분이다. 손주는 가슴에 안기는 것이 좋은지 연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응응"거리며 손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킨다.


손주는 버스나 스쿨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응응" 거리며 손짓을 한다. 손주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징징징" 소리를 내며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손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전기버스가 지나간다. 일반버스와 전기버스를 구분하는 손주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길을 걸어가는데 손주가 "징징징" 소리를 내면 어김없이 전기버스가 다가오거나 지나간다.


지난주에 소아과에 갈 때는 손주가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삐죽거리며 울기 시작해서 진료를 마칠 때까지 울어서 당황했다. 손주가 병원에 가는 것을 어떻게 알아채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이번에는 손주를 안고 가면서 손주에게 "병원에 가서 울지 않기로 할아버지와 약속!" 하며 말을 건네자 손주가 "응응"거리며 대답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여러 차례 "울지 않기"라면서 달래주자 손주는 진료를 보러 갈 때까지 울지 않았다.


손주는 진료실에 들어가서 코를 빼낼 때 한번 큰 소리로 울고는 바로 그쳤다. 손주의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와 손주를 다시 안고 되돌아오는데 손주를 따라오는 딸과 함께 겪었던 지난 시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딸도 유년 시절에 감기로 인해 고생한 적이 있다. 감기로 몸에 열이 나면 열이 머리로 전달되어 경기까지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런 아이를 출근을 미루고 서울역 뒤편에 있는 소아전문병원을 찾아가기 위해 아내와 택시를 타는데 애를 먹었다. 아내가 도로가에서 택시를 세우고 나서 내가 아이를 안고 다가가면 택시가 그냥 가버렸다.


근 한 시간을 기다려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의사는 경기하고 있는 아이를 데려와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의사의 어이없는 말을 듣고 그날 이후 아이가 감기 기운만 있으면 밤을 지새워 열을 내렸다. 그 이후 아데노이드 수술을 받은 후 경기까지 가는 일은 사라졌다.


내 가슴에 안긴 파릇한 봄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희망의 꽃이다. 그리고 내 뒤에 따라오는 봄꽃은 젊은 시절에 안아 본 봄꽃이고, 지금 안고 가는 봄꽃은 미래의 희망을 안고 가는 꽃이다.


손주는 내 가슴에 안긴 것이 마냥 좋은지 연신 "엄마"라고 부르며 뒤를 돌아다본다. 그런 손주가 귀여워서 "할아버지 어디에 있나"하면 손으로 나를 찌르듯이 가리킨다.


내 인생에서 젊은 시절에 피어난 봄꽃은 엄마가 되어 나를 따르고 뒤늦게 핀 봄꽃은 내 가슴에 안겨 "하부지"를 불러댄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오는 내내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가슴에 꽃보다 아름다운 두 세대의 봄꽃을 안아 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손주는 기분이 좋은지 엄마를 부르며 싱글벙글 웃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딸의 웃음에 행복의 기운이 넘쳐난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오늘 아침에 만개한 개나리꽃보다 고운 미래의 봄꽃을 가슴에 안고 가는 내 뒤로 젊은 시절에 피어난 봄꽃이 엄마가 되어 따라오니 이보다 더 진한 삶의 희망가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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