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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落花)

by 이상역

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등산길에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수를 놓았다. 꽃은 서로 뭉쳐서 함께할 때가 아름다워 보이는데 떨어진 낱개의 꽃잎은 허무하게만 바라보인다.


등산길 곳곳에 낙화한 꽃잎들이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미인박명이란 말처럼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한 시절도 버티지 못하고 단명하는 꽃잎이 가엽기만 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사라질 거라면 화려하게 태어나지나 말 것이지.


세상의 온갖 것을 유혹하기 위해 왜 울긋불긋한 꽃으로 태어났을까. 봄꽃이 피어나는 계절인데 바람에 날려 분분이 낙화하는 모습에서 가을날의 낙엽을 떠오르게 한다.


등산길에 떨어진 꽃잎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발걸음이 사뭇 무겁기만 하다. 내 발길에 순서 없이 차이는 꽃잎들은 어디서 날아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낙화한 꽃잎을 즈려 밟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내게 밟힌 꽃잎들이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피해서라도 걸어갈 텐데.


등산길에서 꽃잎이 갈 길 모르고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잎이 간 곳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나무에 핀 꽂을 바라보며 아름답게만 생각할 뿐 낙화한 꽃잎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서 머물다 사라지는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는다. 꽃의 생로병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들 중 꽃은 다른 것에 비해 고운 색깔을 갖고 태어나서 더 아름답게 바라보일 뿐이다.


구봉산 정상을 지나 도로에 가까운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하모니카로 '밀양아리랑'을 불면서 지나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갑자기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자 두 어깨가 들썩인다.


하모니카 소리에 맞추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라며 콧노래로 흥얼거리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고 보니 하모니카 소리를 타고 퍼져나가는 밀양아리랑 노래나 바람에 펄럭이며 날아가는 꽃잎이나 같은 신세란 생각이 든다. 단지 하모니카 소리는 흥겹게 기운을 돋워주고, 낙화한 꽃잎은 이지러진 삶의 흥망성쇠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은 내 발걸음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방향성을 모르겠다.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가면 신명 나는 삶이 기다릴 것 같고, 떨어진 꽃잎을 따라가면 나도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데려갈 것만 같다.


나무에 핀 꽃은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화무십일홍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는 꽃과 같은 화려한 화무십일홍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단조로운 반복의 일상을 견디며 하나하나 개선하고 설계해 나가는 일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등산을 마치고 낙화한 꽃잎이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 것인지 길가에 선 벚나무에게 물어나 보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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