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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계절의 시계추

by 이상역

아침에 승상산 등산을 마치고 상일동 빌라단지 앞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쓰레기를 담는 자루에 길가에 떨어진 꽃잎이 절반쯤 들어차 있다.


자루는 낙엽이나 쓰레기를 담는 것인데 꽃잎이 담겨 있어 의아했다.러고 보니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더니 만개한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청소하는 아저씨가 쓸어 담은 것 같다.


최근에 봄날 같지 않은 봄날의 연속이다.아닌 폭설이 내리고 꽃샘추위보다 강한 추위가 내려오고 우박에 강풍까지 불어대니 봄이란 계절이 갈 곳을 잃은 채 이리저리 혜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이 지속되면 겨울에서 봄을 건너뛰고 여름의 길목으로 들어서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계절에서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면 우리나라도 열대성 기후로 접어들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하늘이 맑게 보이더니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우박이 쏟아지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강풍까지 불어댔다.


봄철 야구시즌을 맞아 TV로 중계하던 야구 중계도 중지되고 산으로 등산 간 사람들도 고생했을 것이다. 계절의 시계추가 정해진 길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날이 빈번해지면서 고장이라도것만 같다.


계절의 시계추는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자연이 스스로 가는 길을 시계추는 단지 가리키는 역할만 할 뿐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마도 계절은 제멋대로 가지 않았을까.


계절의 시계추가 고장이 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과 식물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땅에 기대어 시계추가 가리키는 대로 계절에 적응해 가며 한 해를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계절을 가리키는 시계추가 고장이 나면 식물이나 농작물은 성장을 멈추거나 봄날에 틔운 새싹이 고사한다. 식물이나 농작물에게 성장의 멈춤이나 고사는 곧 한해살이 마감을 의미한다.


올봄에 일어나는 잦은 날씨 변화가 기후 변화 현상인지 아니면 산불이다 관세부과다 탄핵 정국 등 사회적으로 어수선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한 번 고통을 겪어보라고 시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절의 시계추가 자연스럽게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절의 시계추는 그런 부탁을 들어주지도 부탁할 대상도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계절의 시계추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뜻한 봄날에 폭설이 내리던 강풍이 휘몰아치던 강한 추위를 몰고 오던 그저 묵묵히 견디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요즘처럼 잦은 날씨 변화는 이제 그치고 제 길을 찾아갔으면 한다. 봄을 넘어 여름과 가을과 겨울까지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너무 많은 고통과 피해를 줄 것 같아서다.


앞으로 고장 난 계절의 시계추가 제 길을 가도록 내딛는 발걸음도 조심하고 들숨과 날숨을 쉴 때도 주의해야겠다.


나의 작은 노력으로 자연의 시계추를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산 자의 의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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