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의 계절 13화

구두는 어느새 나였다

혼자 살기로 했다(7)

by 김사과

구름은 너무 무거워서 지평선에 가까워졌다. 하얗던 곳으로 검은 것이 물들어갔다. 채도가 높은 것들이

점점 탁해졌다.


밟히고 밟히는 것들 위로 버티고 버티는 것들이 걸어간다. 버린 후에도 끝끝내 남겨지는 것들이다.


버렸던 것들을 뒤져보면 버렸던 것은 그때의 나였다. 버리면서 조금씩 남았다면 무엇을 버렸기에

지금이 된 것일까?


달콤한 것들을 버렸다. 달콤한 꿈과 달콤한 말들을 버리고 씁쓸한 것이 남았다. 달콤했던 추억을 그 자리에 두고 돌아섰다.

달콤한 색깔들, 향기들, 노래들 모두 따라오지 않았다.

버려진 것은 달콤한 것들일까? 나일까?



반짝이는 것들을 버렸다. 보이고 싶은 것들을 버렸다. 보아주기 바라던 것들에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고 지하실에 넣어두었다.


식탁 위를 채운 아름다운 음식은 식었다. 방 안을 채웠던 노랫소리는 멈췄고, 따뜻한 온기의 벽난로에는 재만 남았다.


책장을 가득 채웠던 책들은 노끈에 묶여 폐지가 되고, 몇 권만 초라하게 남았다. 새로운 생명이 숨 쉬던 화분들은 시들고 얼어버려, 이제 남지 않았다.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

듣던 노래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함께 춤추던 이들은 다 어디에 버려져 있나?


지금 내 옆에 남은 것들이 나다. 내 책장의 책들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화분이 살지 못하는 내 집이, 비어버린 냉장고와 흐르고 있는 음악이 지금의 나다.


그러니 버려진 것이 나였다.


10살의 나를 위인전과 함께 버렸고, 13살의 친구를 잃으며 13살의 나를 함께 잃었다.


달콤한 게 좋았던 나를 버리고, 반짝이고 싶어 했던 나를 버리고야 말았다. 버리고 버린 후에 남겨진 것들도 버려지니, 남겨놓은 것들의 의미는 거창한 무의미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저마다의 무게로 떨어진다. 정해준 적 없는 저마다의 자리로 떨어진다. 하얗던 것은 검은 것으로 가득 채워지고, 채도가 높은 것들은 빗방울 속에서 침묵한다.


지금은 비가 온다. 비로 가득 찬다. 비로 의미가

채워진다. 그러므로 곧 비가 그치면 가득 채워졌던

의미는 무의미가 된다.


예쁜 우산을 잃어버리고, 비닐우산을 쓰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다.


아래로 내려앉으며 침잠하는 검은색 위로 하얀색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지나가는 것은 그대로 두면 된다. 버려야 하는 것은 버리면 된다. 남겨진 것 역시 어느새 지나갈 테니까.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주 쉽다.

구두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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