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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Nov 22. 2022

작은 것을 위한 기록

가을바람이 꽤나 쌀쌀했다. 따뜻한 커피를 사려고 카페 앞에서 몸을 돌리다 멈췄다. 매일 지나가던 문 앞에서 보도블록의 회색을 닮은 풀꽃과 눈이 마주쳤다.

손가락만치 작은 아이가 문 앞 계단 아래 서있었다.


여름내 꽃 피었을 때 분명 보았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긴, 길가 어디서나 보던 흔한 하얀색 풀꽃을 기억할 리 없었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는 다시 문 앞으로 나와 풀꽃을 사진에 담았다. 눈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해 보니 풀꽃은 보도블록 틈에서 시들어있었다.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민들레처럼 가느다란 털이 되어있었다.


커피를 사들고 나오며 학원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출근할 때 이 작은 풀꽃은 남아있을까?

추운 날씨에 바람은 더 차가워질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찾는 손님들이 허둥지둥 그 계단을 오르내리다 밟고 지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청소하던 주인이 비질을 하다가 쓰레기와 함께 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작으니까.


누구에게도 소중하지 않은 그 풀꽃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없고 불러주지도 않는 그 손가락보다 작은 풀꽃을 기억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잊을 게 뻔했다. 우린 너무나 바쁘고 각자의 삶에 매여있으니까.


어느 날 아침 그 풀꽃이 없다고 해도 누가 기억할까?  겨울은 추울 테고, 눈은 쌓일 테고, 봄이 오면 늘 그렇듯 수많은 꽃이 피어댈 것이다. 잊혀진 것 위에 새로운 것이 피어왔으니까.


그래서 크고 싶은 걸까? 빛을 받고, 잎을 만들고 뿌리를 더 깊이 내려 조금이라도 커지고 싶은 건 누구나 같다. 생존의 욕망이다. 태어났으니 스스로 생존해야 하고, 그 방법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산책 중에 자꾸만 눈이 가는 나무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잎이 많은 나무다. 볼 때마다 '어마어마하구나.'라든가, '뿌리는 얼마나 클까?'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나무다.


그 나무를 볼 때면 보이지 않는 땅 속의 뿌리를 상상한다. 땅속을 다 헤집어놓고 움켜쥐고 있을 뿌리. 그 덕분에 부피를 키워서 가족을 다 내쫓고, 집을 오롯이 혼자 차지하고 있는 나무.


동네 여기저기  낮은 집들을 허물고 고층의 아파트와 빌라를 짓고 있다. 난 궁금하다. 저 회색의 빈집을 사람들이 먼저 부술까? 나무가 먼저 부술까? 집이 부서지고 나면 나무는 분명 잘려나갈 것이다. 욕망은 더 큰 욕망과 생존에 포식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게 주어진대로 사는 삶에도 의미는 있다. 한껏 욕망을 쫓으며 사는 삶을 손가락질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난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할 때, 작고 곧 바스러질 것 같은 그 풀꽃의 안부가 궁금할 것 같다. 풀꽃이 사라지면서 겨울을 맞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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