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끼면
있던 것들 보이지 않으면
이곳이 그곳인지 알 수 없기에
나는 나인지 궁금해진다
살아있기에
길은 가리워지고
남는 것은 발아래 좁은 바닥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안개
남는 것은 눈앞의 손
내 손일까?
안개가 흐르고
나는 사라진다
보이던 것 사라지면
보이지 않는 것들 활개친다
오늘 쓴 것은 의미 없는 말장난이지
어제 쓴 것들은 구덩이에 묻어버려
내일은 내일은 내일은
불안과 의심과 두려움이
점점 안개를 따라 흐른다
안개가 안개인 줄 모르고
높이 높이 피어오르면
거대한 괴물이 되면
집어삼키는 괴물의 뱃속
바꿀 수 없는 어제와
바꾸지 않을 오늘과
내일 내일 내일로 배를 채운
안개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열 개의 손가락만 허공에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