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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ug 01. 2022

내 빨대의 색깔


집 근처에 있던 김밥 천국이 문을 닫았다. 폐업을 한 것이다. 몇 주 동안 공사를 하더니 그 자리에 커피 전문점 이 하나 들어섰다.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 화장품 가게인가 했는데 커피숍이었다. 새로운 커피숍은 오픈을 하자 싼 가격으로 손님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정작 내 눈에 띈 것은 테이크아웃하는 창가에 놓인 주황색 빨대였다.


여긴 주황색 빨대네.


이건 마치 아이돌 그룹의 팬덤 색깔 같았다. 이젠 세계적인 색깔이 된 방탄 소년단의 보라색 같이 말이다. 블랙 핑크는 이름 자체가 색깔이고, 조금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H.O.T의 하얀색, god의 하늘색처럼 브랜드마다 상징하는 색깔이 있다.

커피숍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 하면 초록색, 빽다방은 파란색, 할리스는 빨간색, 커피빈은 보라색이 정해져 있다. 색깔은 그렇게 그 상품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 기억 속에 깊이 박히도록 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묻고 있다.


너는 무슨 색깔의 빨대를 갖고 있는 거야?


나는 INFJ다. 예수와 히틀러의 교집합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백설공주와 좀비에 양발을 걸치고 있다고. 너무 먼 간극 사이에서 기우뚱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게 나다.

 ‘빨간 머리 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취향의 저울에 올려놓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평행을 이룰 게 뻔했다.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본방 사수하면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찾아본다. 이건 어떻게 타협을 할 수가 없다. 중간 지점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 말고, 잘 하는 게 뭐예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그 답을 독촉했고,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 내 빨대의 색깔을 찾아내기 전에는 뭘 써도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잘하는 것을 찾아내면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결국 빨간 머리 앤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중간쯤에서 타협하는 방법밖에 없다. 백설공주를 빼고 나일 수 없고, 좀비를 빼고 나일 수 없다. 그 중간 어디쯤이 과연 진짜 나일까?

지금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있다. 느리게 더듬거리며 내 빨대의 색깔을 찾고 있다. 어쩌면 내 빨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색깔이 크리스마스 사탕의 회오리처럼 섞일 것도 같다.


좋아하는 것 말고, 잘 하는 게 뭐예요?


이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대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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