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과 Aug 29. 2022

행복한 고양이

늦여름의 햇살은 무척이나 반짝였다. 보이는 모든 사물이 빛으로 인해 눈부셨다. 빛은 너무나 강렬했지만 공기는 점점 서늘해지는 낮 5시쯤, 골목 입구에 들어서다 멈칫하고 섰다.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 가운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날씬한 고양이의 그림자가 길게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고양이도 움직이지 않는 채 서로를 응시했다.


“잠깐! 낯선 인간, 다가오지 마라냥.”

“우리 몇 번 봤잖아. 지나가기만 할게.”

“서로 거리를 두고 지킬 건 지켜라 옹.”


고양이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 아래로 들어가 웅크린다.


나는 천천히 자동차 옆을 걸어간다. 고양이는 뜨겁게 달궈진 차아래 숨어서 낯선 인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생각해 보니 꽤나 자주 본 사이에 골목 고양이는 볼 때마다 모른 척이다.


주인은 있는 걸까? 그냥 버려진 길고양이 일까?

나는 녀석을 자주 보았다. 보는 곳은 그렇게 골목 한가운데이거나 앞집의 담을 조용히 걸어가는 모습이다.



한 뼘도 안 되는 담벼락의 좁은 돌 위를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담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와 마주치면 나는 ‘안녕!’하고 인사한다.


“언제 봤다고 친한 척? 가던 길 가라냥.”


무뚝뚝한 고양이는 높은 담에서 휙 뛰어내려 또 자동차 아래로 걸어 들어가 숨는다. ‘야옹’하고 한 번은 아는 척해주면 좋으련만 골목 고양이는 도도하고 냉정하다.



한 번은 3층 집 난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위험할 정도로 높은 난간에 배를 깔고 여왕처럼 내려다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사진을 찍으라고 바라봐준다.


“넌 왜 항상 그런 데서 쉬는 거야?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만 골라서.”


“당신은 왜 항상 혼자 있냥?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만 고르냥?”


집 앞 골목에는 친구 같은 낯선 고양이가 살고 있다. 이 고양이는 냥집사가 있는 걸까? 밥은 먹고사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걸까? 볼 때마다 궁금하다. 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에 나는 골목 고양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가도 츄르를 하나 사볼까, 고민한다.



그러다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동네 빵집 앞에서였다. 세일하는 빵을 진열하는 진열대 위에 잿빛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비가 오니 빵을 내놓지 못한 빈 진열대, 그 위에서 고양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데도 아직 어린 고양이는 깨지 않았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빗소리를 들으며 빵 냄새를 맡으며 자는 잠은 얼마나 달콤할까? 이게 행복이겠지?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믿음.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잠에서 깨면 맛있는 먹이가 있기에 찾으러 빗속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비 오는 골목을 들어서자 마자 나는 주차된 차 밑을 내려다보았다. 혹시라도 골목 고양이가 비를 피해 숨었나 보았다. 없었다. 어디서 비를 피하고는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집으로 걸어가는 내 등 뒤로 도도하고 냉정한 골목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행복은 각자 느끼는 거다 냥
나는 차 밑에서 담장 위에서 행복하다 냐옹
작가의 이전글 열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