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의 계절 01화

봄 편지

혼자 살기로 했다(5)

by 김사과

나비가 무성한 잡풀 위를 날았다. 4월의 햇살은 나비만큼이나 밝은 노랑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널을 지나 빛을 향해 나왔다가, 노란 햇살 속의 노란 나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 알랑거리는 느린 움직임 때문이었다.


넓은 공터에는 억세져서 이젠 먹을 수 없는 쑥이 자라고, 개망초도 피어있었다. 아직 날아가지 않은 하얀 털 부숭이 민들레도 보였다. 이름은 그 정도다.

이름 모를 잡풀이 더 많은 공터였다. 그 푸릇한 가운데에 원두막 하나가 있었다.


가던 길을 돌아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걸어 들어갔다. 걷는 내내 전철이 고가 철도를 지나가며 덜컹이는 소리가 들렸다. 잡풀 위로는 늦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오래된 나무에 슬레이트 지붕을 덧붙인 허름한 원두막이었다. 더 가까이 가서 기둥으로 삼은 나무를 보았다. 낡은 잿빛이었다. 주름 같은 나이테도 보였다.


잿빛 나무 기둥을 보는 순간 오래전 이 동네에 있었던 여인숙 골목이 떠올랐다. 호기심으로 걸어 들어갔던 여인숙 골목은 참 좁았다. 좁은 골목의 오른쪽에 여인숙들이 붙어있었다. 붉은 벽돌집, 하얀 타일 집, 초록의 담쟁이가 달라붙은 집. 다닥다닥 붙은 여인숙들의 현관은 붉은색 문이었다.


나무로 만든 붉은 문, 나무로 된 마루와 계단, 포도나무 줄기가 엉겨서 하늘을 가린 여인숙의 허름한 마당까지 기억이 났다. 그 기억 끝에 나이 든 여주인의 말이 또 생각났다.


배 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지.


그 여인숙 골목은 이제 사라졌다.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 되었으니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나는 왠지 이 원두막을 만든 나무의 원래 있던 자리가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뱃사람들이 머물던 그 여인숙의 마루이고 계단이었던 나무들. 여인숙을 철거하며 버려진 그 나무를 주워다 만든 동네 쉼터가 아닐까?


원두막에 잠시 앉아보았다. 서늘한 그늘 속으로 들어가자 초록색 풀밭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보라색 등나무 꽃이 흔들렸다. 원두막의 지붕을 가득 채운 등나무 꽃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봄이 끝나감이 느껴졌다. 봄이 끝나기 전에 잘 쉬었냐고 묻는 듯했다.


- 잠시 멈춰보았나요?

- 하얀 구름 때문에 더 파래진 하늘을 보았나요?

- 봄의 향기가 가득한 바람을 느껴보았나요?


겨울 동안 수고 많았고, 여름 동안 지치지 말라는 응원을 하고 있었다.


- 너무 멀리 보지 말아요.

- 밑에 핀 꽃도 보세요.

- 뒤에서 바라보는 그림자의 빛깔도 확인하세요.


원두막 아래에 둔 두 발을 내려다보았다. 참 잘 걸어 다녔고,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고 한 번 웃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 작은 원두막에서 일어나 돌아온 길을 거슬러 걸었다. 노란 나비는 이름 모르는 잡초 위에서 나풀거렸다. 원두막은 등 뒤로 점점 멀어져 갔다.


누구에게나 그런 노랑나비가 알랑거리며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잠시 멈추고 돌아보면 원두막 같은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던 길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좀 들더라도 잠시 앉았다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겨울과 여름 사이의 봄처럼,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보던 것만 보지 말고 안 보던 것도 보라는 계절. 당신의 옆에 꽃이 있으니 멈춰서 보고 가라고, 당신 옆에 이제 막 솟은 새싹이 있으니 멈춰서 칭찬해 주고 가라는 계절이다. 멈춰있다 보면 분명 보게 된다. 내 옆에 늘 존재했던 바람과 늘 따뜻했던 햇살과 웃고 있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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