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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Aug 22. 2022

무지개를 보았다


전철이 역에 도착하고 내리는 사람들 끝에 서서 따라 내렸다. 지하 계단 쪽으로 걷는데, 하늘을 찍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을이 질 무렵이긴 했지만 노을은 내가 걸어가는 쪽의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돌아서서 그의 핸드폰이 향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철의 안전문과 천장의 그 틈 사이로 거대한 무지개가 보였다.

너무나 가까이 잡힐 듯 한 곳에 선명한 무늬를 만든 무지개가 떠있었다. 신기하게도 무지개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이 된 듯했다.


나는 지하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무지개는 더욱 거대해졌다. 무엇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자연의 위압감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을 빠져나오자 무지개의 완전한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반대쪽에서는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무지개는 초록과 파랑보다 빨강, 노랑이 더 진했다.


뭔가 달랐다. 평범했던 하루가 너무나 특별해졌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냥 좋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자 마냥 좋지가 않았다.


매미 소리만 가득한 한적한 골목의 작은 마트 같은 삶이었다. ‘내일도 오늘 같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다행이야.’ 그런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물방울 하나하나에 빛을 반사해 가며 무지개가 거대한 질문을 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 거야?


광장 앞에 모인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춘 채 같은 방향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나이 든 어른들도 같았다. 물방울과 빛의 진동이 만든 아름다운 인사에 모두들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에 감탄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조용하고 무난하고 지루한 삶에 대해서.

바닷물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당연한 일상에 대해서. 바람이 불어오고 멀어지는, 별이 뜨고 지는, 밤이 오고 낮이 찾아오는 늘 감사해온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다음 무지개가 건네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 거야?


그 대답을 찾기도 전에 무지개는 사라졌다. 순식간에 하늘은 원래의 하늘로 돌아갔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향해 걸었다. 나도 신호등의 초록색 신호를 보며 걸었다. 하지만 질문은 무지개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답이 떠올랐다.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생긴다.


알면서도 잊고 사는 그 말이 내 대답이었다. 비가 내린 후에 무지개가 생긴다.


비가 없어서도 안 되고, 빛이 없어서도 안 된다.


삶의 순간순간 비가 내릴 때도 있다. 그 빗방울에 빛이 반사된다. 각자 다른 색깔로 반사된다. 어느 나라에선 희망이고, 어느 나라에선 행운을 상징하는 이 무지개는 비와 빛이 만나야 볼 수 있다. 비를 맞다 보면, 햇살에 감사하다 보면, 어느 날은 뜻밖의 반가운 무지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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