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횡격막 아래가 죄여 왔다. 버스 정거장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에 자리한 두 개의 커피숍 때문이다. 곧 철거될 것 같은 2층 건물에 보신원, 레코드 상점, 분식집, 부동산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커피숍 이야기다.
달 그리고 hyper block
그 사이에 내가 어정쩡하게 서있다.
거리에 한 발 내딛기 무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폭우도 카페인을 요구하는 나의 욕망을 꺾진 못했다. 잠시 한 10초 정도 한국을 빛낸 발명품 5위라는 믹스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학원 바로 밑에 커피숍이 있다는 것에 용기를 갖고 빗속을 나섰다.
12시가 넘었지만 커피숍(hyper block)은 문을 열지 않았다. 비 때문에 오늘은 문을 열지 않으려나보다 했다. 폭우 속에서 샌들과 바지는 젖어가고, 카페인을 향한 욕망은 더 커졌다. 괜한 오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렇다고 길을 건너 책방 골목까지 갈 정도의 오기는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작은 커피숍 ‘달’로 눈이 옮겨갔고, 다 젖어버린 발이 빗속을 뚫고 움직였다.
출근길에 항상 지나가던 커피숍. 탁자 위에는 택배 박스가 항상 쌓여있던 어수선했던 커피숍. 그래서 늘 관심 밖이었던 그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 이 빗속에 온 거예요?”
“비 맞지 않게 캔에 담아줄게요.”
“쿠키 하나 먹어봐요. 비 오는 데 와준 서비스.”
50대의 여자 주인은 비닐 봉투에 캔커피와 쿠키를 넣어주었다. 학원에 도착하자 샌들을 신은 발과 바지의 종아리 부분이 다 젖어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좋았다. 캔커피는 너무 시원했고, 쿠키는 달지 않고 고소했다.
그날 이후부터 출근길이 어려워졌다.
커피숍 ‘달’에서 커피숍 ‘hyper block’까지는 30미터 정도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고민을 한다.
두 커피숍 중에 어디를 가야 하지?
지난 1년 반 동안 맛있는 커피와 좋은 음악과 글쓰기의 영감을 주었던 hb와 친근함 때문에 급속히 가까워진 달 사이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달에서 커피를 산 날은 저 멀리 보이는 hb에 가까워질수록 두근두근거렸다. hb에서 커피를 사기 위해 달을 지나칠 때면 달의 주인이 등 뒤에서 나를 부를 것만 같아 두근두근거렸다.
인테리어부터 음악 센스까지 취향저격인 hb의 주인에게 매력을 느끼다가, 모든 것이 어수선해서 편안한 이모 같은 달의 주인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마음이 변하는 것은 결코 숨길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싫은 것을 좋다고 할 수 없고, 좋은데 멀어질 수 없다.
나는 지금 아슬아슬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취향 자체가 늘 그래 왔다. 로맨스를 좋아하며 동시에 공포를 상상하고, 벚꽃을 사랑하며 동시에 천둥과 번개가 반짝이는 밤을 기다린다. 늘 그렇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오락가락 해왔다. 이번에도 난 결정하지 못하고, 커피숍과 커피숍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할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돌아보며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삶이다. 내가 선택한 그 길을 따라 여기에 와있고, 그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커피 정도는 선택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쳐도 되지 않나? 그렇게 합리화시켰다가도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내 횡격막 아래는 묵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