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미

by 김사과


거울 앞에 말린 장미를 놓는다

여름은 물기를 다 쏟아내고 말라버렸다


달빛은 바람으로 바스러지고

풍경을 흔드는 바람은 자꾸만 뒤로 흐른다


맞춤법을 알게 된 나이에

맞춤법이 틀린 편지를 읽는다


멀리 간 사람은

몇 줄의 글자로 남았다

어린 날의 문장은 낱말이 되고 낱자가 되어 흩어진다

내 틀린 문장들은 불태워졌겠구나


지키지 못한 약속은

함께하지 못할 꿈은

마른 장미가 되어 향기만 남았다

꽃잎에 쌓이는 먼지만큼

본래의 빛깔은 잊혀진다


거울 속에는 말라버린 장미가 담겨있다

거울은 마른 장미를 비추지만

물기가 똑똑 떨어져 가던 긴 순간은 비추지 않는다


멀리 간 사람은

흐린 잔상으로 남아버린다

말라버린 향기는

늦여름 햇살에 바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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