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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Feb 27. 2024

얼굴

연재소설

“백유리! … 안정태! ……“


어떤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숲에서 들리던 새소리와 먼 파도 소리까지 사라진 진공상태 같았다. 원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움직이는 것은 오직 안개뿐이었다. 길 위를 떠다니는 물방울들이 그의 뺨에 달라붙었고, 친구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입안으로 콧속으로 미세한 물방울이 스며들었다.


‘이게 안개라고?‘


아무리 심한 안개라도 이렇게 다 가릴 순 없다는 생각 속으로, 조금 전 들었던 칼날 같던 사이렌이 지나갔다. 3초 길이의 사이렌이 세 번 울렸을 때 느낀, 그 소름 돋는 날카로움이 그의 귀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뿐이었다. 머릿속에 박힌 사이렌 소리와 원우 본인의 발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움직이는 거라고는 하얀 안개 입자 하나하나였다.


원우는 핸드폰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주머니를 만지는 순간, 핸드폰은 민박집에 두고 온 가방 속에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안정태!”


조금 전의 사이렌 소리만큼이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친구를 불렀다. 답은 없었다. 원우는 걸어왔던 방향, 민박집 쪽과 해변 쪽을 번갈아 보았다. 민박집 쪽으로 사라진 백유리와 해변 쪽으로 사라진 안정태를 번갈아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




좁고 하얀 아스팔트 길은 구불거렸지만 하나였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다. 어느 쪽으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던 원우는 적어도 바다라는 끝이 있는 해변 쪽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민박집을 놓친다면 길에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해변은 가깝다고 했던 황은수 동생의 말을 되새기며 원우는 발걸음을 옮겼다.


“백유리!“


돌아오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파도 소리라도 들리면 소리를 이정표 삼아 걷겠지만, 그저 안개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 그 위에 서 있는 두 발과 두 손뿐이었다.

원우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흐르는 하얀 안개 속에서 갑자기 툭하고 안정태가 튀어나왔다. 비명이 짧게 나올 만큼 놀란 원우는 정태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원우의 귀로 익숙한 말투가 들려왔다.


“왜 혼자야? 정태는?”


짜증스럽게 상대를 비난하는 말투로 정태가 정태를 찾았다. 원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뭐?”

“정태 어딨 냐고? 너희 같이 있었잖아.”


원우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안정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안정태였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어울려 왔던 친구. 아버지 돈 덕분에 그럭저럭 대학까지 졸업하고 감옥을 피해 온 양아치 새끼.


“정태 못 봤냐고 묻잖아. “




그 안정태의 얼굴을 하고 지금 정태를 찾고 있다면, 앞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 걸까? 원우는 한 걸음 물러나서 안개 속에 마주한 정태의 얼굴을 하고 정태를 찾는 자의 이름을 불렀다.


“백유리?”

“그러게, 내가 나오지 말자고 했잖아. 미쳐! 발 아파 죽겠어.”

“네가 백유리라고?”


원우는 정태를 향해 정말 백유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정태의 얼굴을 하고 자신이 백유리인 척하는 자가 원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이 비어있었다. 안정태의 욕망이 가득하던 눈도, 누구든 조롱하려 드는 백유리의 눈도 아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내가 백유리로 안 보여?”


원우는 그가 정태도 유리도 아니라는 느낌에 굳어버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와 원우의 주변은 온통 안개였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직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길과 운동화를 신은 발과 발, 두 사람을 둘러싼 안개뿐이었다.

오직 움직이는 것은 안개뿐이었고 확신을 갖고 살아있는 것도 안개뿐이었다. 안개는 조금씩 원우를 감싸며 흘렀고, 또 맞은편에 선 안정태의 얼굴을 한 채 백유리라고 말하는 자를 안개로 가렸다.


정태인지 유리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은 한발 물러나더니 안개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 여름의 바닷물 위에 둥둥 떠 있던 해파리처럼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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