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골목 끝 나무들이 흐릿했다.
아파트의 꼭대기는 지워지고,
늘 보던 세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뭉개져 있는 세상.
보이는 것 모두를 다 덮을 듯 움직이는 것은 안개였다.
거대한 자연현상 앞에 서자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 같이 느껴졌다.
‘일순간에 가려지는 것 중, 가장 작은 것이 나일 테지.’
마음속에도 안개가 꼈다.
나는 안개 낀 겨울의 아침을 사진으로 찍었다.
내 눈으로 본 모든 것이 사진 속에 담기기를 바랐다.
거대한 아파트 건물과 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무와
눈구름으로 가득한 잿빛 하늘,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는 듯한 살아있는 안개까지.
찍힌 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거대했던 아파트는 손가락보다 작았다.
잿빛의 두꺼운 눈구름은 늘 보던 하늘이었고,
나무는 그저 나무였다.
그 사물들 어디에도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흐린 겨울의 평범한 풍경이었다.
사진 속에서는 차가운 바람도 불지 않았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눈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안개는 여전히 살아서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곧 나를 덮칠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찍었는데 사진 속에서는
안개가 있지만 없었다.
나는 다시 안개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안개는 내가 생각한 그 괴물이 아니다.
곧 사라질 자연 현상 중에 하나다.
어쩌면 지독한 미세먼지일 지도 모른다.
진짜는 무엇일까?
사진 속에 담긴 안개일까?
내 눈으로 본 안개일까?
아니면 내가 마음속에 만든 인격을 가진 안개일까?
안개에게 인격이 있을 리가 없다.
의지가 있는 생물일 리가 없다.
그 생명은 내가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낸 안개는 나로부터 나온 것이다.
내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
내가 두렵다고 느끼는 것,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방금 전 찍은 겨울 풍경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안개를 찍었지만 안개가 없는 사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마음으로 느낀 것도 담지 못했다.
나는 사진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오후가 되면 안개는 사라질 것이다.
그 거대하고 두려운 안개는 아무래도
내 마음속에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