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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Feb 19. 2024

안개 속으로

(5) 연재소설

저쪽 길로 해서 쭉 가면 해변이 있어요.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기에는 거기가 제일 좋아요.


민박집주인의 딸은 손가락으로 대사리 해변을 가리켰다.  세 친구들은 동시에 그 손 끝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끝날 때쯤 신기한 걸 볼 수도 있어요. “


신기한 게 뭐냐고 정태가 물었지만 대답 대신 묘한 웃음만 남기고 황은채는 건물 뒤로 사라졌다. 나가보자는 정태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원우가 따라나서자, 유리는 짜증이 가득해서 소리쳤다.


“나 혼자 여기 있으라는 거야? “

“왜? 겁나? 황은수 귀신 나올까 봐?”

“입 닥쳐라.”     


원우는 민박집주인의 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는 친구들의 싸움을 말렸다.      


“둘 다 좀 조용히 해. 여기 놀러 왔어? 뭘 알아내려면 누구한테든 물어봐야 할 거 아냐. “


원우의 말에 정태도 유리도 곧 이성을 찾았다.      


“여기 왜 왔는지 잊지 마.”


이원우가 먼저 계단을 내려가자, 두 친구가 그 뒤를 따라 하얀 아스팔트로 된 포장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나간다고는 해도 섬이 너무나 고요했다. 세 사람의 발소리 외에는 먼 파도 소리뿐이었다.




바다 쪽은 안개가 피어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 울린 사이렌이 장난처럼 느낄 만큼 바다는 맑았고, 주황색의 윤슬로 반짝거리기만 했다. 정태는 해변 쪽에 상점이나 식당이 있을 거라며 앞장섰고, 유리는 굽이 높은 샌들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며 뒤에서 투덜댔다. 그 사이에서 원우는 먼바다를 보았다. 작은 고깃배가 떠 있고 해가 조금씩 가라앉는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잔잔해지게 했다.  


“안개는 언제 낀다는 거야?”


정태가 길의 이쪽저쪽을 살피며 말하자, 유리가 뒤를 돌아 민박집 쪽을 한 번 보고는 원우에게 물었다.     


“걔, 황은수 동생 어때? 뭐 아는 것 같아?”

“모르겠어. 그런데 너무 닮은 거 같아.”     


원우의 대답에 정태가 돌아서 웃었다.      


“그렇지? 보고 깜짝 놀랐어. 황은수 쌍둥인 줄.”     


안정태는 뒤로 걸으며 계속 말했다.     


“그 영상, 동생도 봤을까? 그 정도 닮았으면 친구들이나 친척들도 헷갈릴 것 같은데? 아! 그래서 학교 그만두고 노는 건가? “


정태의 말에 이번엔 백유리가 킥킥댔다. 그때, 원우가 걸음을 멈추고 정태의 뒤를 바라보았다. 원우의 눈이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의할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한 그 표정을 보고 안정태도 뒤돌아섰다.

산이었다. 산이라고 하기엔 낮은 언덕 같은 숲에서 하얀 안개가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빠른 속도로 포장된 논길을 채웠다. 초록의 나무들 사이에서 피어오른 하얀 물방울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더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지듯 기어 내려왔다.


정태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안개 가까이 걸어갔다.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누르고 움직이는 안개와 산을 찍었다. 원우는 안개 쪽으로 가까워지는 정태를 보며, 불길한 기분에 다가가지 않았고, 유리는 저 혼자 뒤로 물러났다.      




“안정태! 그만하고 와. “

“잠깐만. 이런 거 썸네일만 자극적으로 달면 조회수 폭발이야. “


정태는 한 걸음씩 안개에 가까워졌고, 어느새 그의 발밑으로 하얀 안개가 차올랐다. 이원우는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왔던 방향으로 돌아섰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에 있었던 백유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걸어왔던 길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였던 논들도, 교회도, 언덕 위의 민박집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얀 안개 사이로 뻗은 좁은 포장도로만 보였다.      


“백유리! … 야아!”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원우는 다시 앞으로 돌아 정태를 찾았다. 불투명한 유리 안에 갇힌 사람처럼 정태의 모습이 보였다. 원우는 그에게 가기 위해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정태가 핸드폰을 든 채로 원우를 향해 돌아보았지만, 눈도 코도 입도 정확히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흐릿했다.


이원우는 안개 속으로 손을 뻗어 정태를 잡아보려 했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흐릿해지더니 곧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정태의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핸드폰 케이스 속의 미키마우스가 마지막이었다.


순식간에 산도 보이지 않았고, 바닷바람에 흔들리던 초록의 논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좁은 길과 길 위에 서 있는 이원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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