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과 Feb 12. 2024

늦여름휴가

(3) 연재소설

사진봉도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2층 야외 선미에 있던 사람들이 1층으로 내려갔다. 혼자 남은 이원우가 고개를 숙여 섬과 가까워지는 바다를 보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닷물에 투명한 우윳빛의 해파리가 둥둥 떠 있었다. 해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물이 흐르는 대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기름진 먹이를 따라 바람을 타고 활공하는 갈매기처럼 말이다.


“왜 전화를 안 받아? 계속 찾아다녔잖아.”


이원우의 뒤로 백유리가 다가왔다. 눈을 전혀 볼 수 없는 검은색 선글라스로도 유리의 짜증을 감출 수는 없었다. 원우는 내내 참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이거 미친 짓 같아. “


“정태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지금 이 시점에 고소한다 그러면 너랑 나, 치명상이야. 정태 말대로 그전에 확인하는 게 나아.”


“너희는 양심도 없어?”


원우의 말에 유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팔짱을 꼈다.


“남 얘기해? 막말로 우리가 7층에서 등 떠밀었어?”     


미간의 주름만큼 목소리가 삐딱했다. 유리는 뒤돌아보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자 말을 계속 이어갔다.


“지가 못 견디고 뛰어내린 거잖아. 솔직히 그 정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걔는 잘못 없어? 눈치껏 기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잖아.”


선글라스에 비친 원우의 얼굴 때문에 그 말은 꼭 자기가 하는 말 같았다.     




“충격! 모 방송국 신입 기자, 막말 파문! 자살은 다 자기 책임. 조회수 장난 아니겠어. “


백유리의 뒤로 안정태가 핸드폰을 들이댔다. 세 개의 렌즈가 점점 더 백유리에게 가까워졌다. 그러자 유리가 팔을 휘저으며 치우라고 소리쳤고, 안정태가 렌즈의 방향을 이원우에게로 옮겼다.      


“잘 생각해. 학교 게시판이든 교수 개인한테든 폭로 글 올라가면 너도 로스쿨 아웃이야. 그전에 갖고 있는 패가 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뭘 갖고 있는지 알아야 대비하지. “


이원우는 정태의 핸드폰을 뺏어 바다에 던지고 싶은 것을 참고, 곧 도착할 섬을 보았다. 정면의 선착장 너머로 절벽이 먼저 보였다. 그 위로는 빽빽한 숲이었다. 선착장 옆에 낚싯배 몇 척이 정박해 있고, 배를 기다리는 섬주민들이 보였다. 섬이 조금씩 가까워지자, 배의 속도가 점점 줄면서 위아래로 출렁댔다.


“솔직히... 죽어라, 왜 안 죽냐? 이래도 안 죽을래? 그랬잖아. 너?”     


유리가 정태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정태는 핸드폰의 영상 녹화를 중단했다.


“어떻게, 너도 해줄까? 백유리 기자님은 황은수만큼 버티지 못할 텐데? 똑같이 한 번 해 봐?”     


정태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돌리고 1층 쪽 계단으로 걸어갔다. 조용히 있던 원우는 점점 가까워지는 섬을 보며 정태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뭐?”

“지금껏 가만있다가. 갑자기.”


정태가 핸드폰을 보다가 주머니에 넣고 원우의 질문에 대답했다.      


“넌 언제나 생각이 많아. 아직 여름이잖아. 늦었지만 여름휴가라고 생각해. “




하지만 8월 말이었고, 사진봉도는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섬이었다. 사진봉도에서 내리는 관광객은 세 친구를 제외하면 섬사람들과 낚시꾼들이 전부였다. 원우는 60대로 보이는 낚시꾼들 뒤로 천천히 걸어가다가 그들이 작은 낚싯배로 옮겨가는 것을 구경했다. 배낚시를 가는 남자들은 다들 들뜬 표정이었다.


그러자 자신의 표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휴가 온 관광객으로 보일까? 들키는 건 아닐까? 그런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원우는 불편한 마음으로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주민들 안에 유리와 정태의 뒷모습이 섞여 있었다. 걸어가는 정태와 유리의 시선 끝에 ‘황 씨 민박’ 광고 스티커를 붙인 봉고차가 보였다. 문이 열린 봉고차 앞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민박집주인의 딸은 정태와 유리를 향해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황 씨 민박 예약하신 분들이죠?”     


그렇게 웃는 민박집주인의 딸에게 정태는 태연히 자기 이름과 유리의 이름을 말한 후, 원우를 가리켰다.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원우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황 씨 민박에서 픽업 온 여자는 잊을 수 없는 그 얼굴과 너무나 비슷했다. 7층 건물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얼굴. 주차 방지턱에 부딪히는 바람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황은수와 꼭 닮은 얼굴이었다.


“황은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이전 02화 그 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